각진 인터뷰
각진이3. 주다살롱 @서울 북촌
2014년 대한민국 서울에 ‘살롱’이 부활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입담 걸걸, 인상 푸근, 인심은 넘쳐서 탈인 두 여자가 야근하고 술 마시는 단조로운 생활을 생산적으로 바꿔보고자 2011년 겨울 결성했다는 ‘주다살롱’. 낮에는 멀쩡한 직장인, 그러나 퇴근 후엔 마담으로 변신해 동네방네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그녀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페북으로만 접하던 이 살롱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술과 차로 지구정복”이 목표인 두 마담을 북촌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이랑’에서 만났다.
2부
주다살롱 조직도를 입수했는데, 거의 주다 ‘다단계회사’ 수준이다
몽) 다국적 문어발 기업을 표방하기 때문에? 흐흐
영) 살아있는 조직도랄까? 사실 사람은 몇 명 없는데-
몽) 회계팀장 몽, 영업팀장 몽, 공장장 영, 주다잉여인력사무소 사무소장 몽. 하부내용 보면 다 몽, 영, 몽, 영, 몽,영, 몽,영… 조직도는 넓고 사람은 반복.
영) 난 어느 날 갑자기 해외 지사장도 돼. “나 태국 가려고” 했더니 “영, 그럼 태국 지사장!”
몽) 영마담이 어딜 가든 거기가 해외 지사! 알래스카 가면 알래스카 지사장 되는 거고. “그 동네 마트에서 뭐가 괜찮아? 어서 거기 특산물을 보냇!!”
조직도에 주다인력사무소는 뭔가?
몽) 사실 뭐 다 개인 인맥이죠.
영) “뭐, 친구동생이 놀아?”
몽) “그럼 걔, ‘주다인력사무소 잉여1’!”
영) 신기하게 저희랑 친한 사람들은 다 일을 잘해요. 기본적으로 일당 백. 하긴 일 못하면 우리가 성질 나서 같이 못해.
몽) 사실 작년 5월부터 영마담은 주다살롱에 거의 휴직계를 냈어요. 그래도 제가 나름 인덕이 좋아서.
영) (한쪽에서 전 부치는 처자들을 가리키며) 지금 저분들도 주다인력사무소 잉여들!
훈훈한 주다살롱 조직도 두 마담을 제외한 인력들의 보수는 담배 한 갑이나 커피 한 잔이다. “그냥 인복”이라는 몽마담의 말에
“당신이 남 못 챙겨줘 안달인 퍼주는 여자”라 사람들이 한번 엮이면 못 빠져 나간다고 반박하는 영마담
워크샵 명칭이“노동착취 워크샵”이라고 들었다
영) “좋은 건 마담 먼저”로 시작을 했는데 요즘엔 마담들 몸이 힘들어서. 우리가 우리 손을 못 따라가요. 손이 너무 크니까.
몽) 그래서 요새 몇 달은 병작업을 못했어요. 궁리하다 애들 불러모아 노동착취 워크샵을 열기 시작한 거지. ‘내가 너무 힘들다, 니네가 와서 일 좀 해라’ <뱅쇼줄께 노동다오> 이렇게 해가지구. 요번 겨울 레몬 작업은 다 애들이 했어요. 내가 안 썰었어.
영) 몽마담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찰리고, 그 밑에 움파룸파들이 필요해.
몽) 그래서 노동착취. 흐흐.
노동착취 워크샵 포스터 기꺼이 노동력을 제공하러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센스만점 포스터들
노동착취라고 했지만, 지난 번 워크샵 보니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꼬물꼬물 음식 만드는 게 하나의‘놀이’ 같더라.
몽) 다행인 게, 기본 바탕이 남과 어울리는데 어려움 없는 분들이 오니까. 난 그냥 뭘 좀 먹여서 분위기 좋게좋게 만들어 놓고, 그 담에 상만 깔면 자기들끼리 너무 잘 노니까.
영) 주다살롱 1주년 때, 우리끼리 축하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나온 게 워크샵이에요. 페이스북 주문자도 처음엔 다 알음알음이다가 그때쯤엔 점점 우리가 모르는 분들도 많아지던 때라.
몽) 우리가 하는 작업을 공개하자! (강조)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영) 처음 워크샵 할 땐 “올까?” “될까?” 했죠. 유자차, 레몬차 만들고서 병에 붙이는 라벨을 크레파스로 직접 만들게 시켰는데, 다들 너무 잘 하고 재밌어하는 거예요.
몽) 사실 워크샵도 적자예요. 사람들 먹을 것 내놓고, 각자 만든 걸 2병씩 나눠주고 하니까 남는 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저희가 좋아서 하는 행사.
주다살롱 워크샵 현장중계 회사 끝나고 달려온 직장인부터 아이를 데려온 가족까지 한자리에 둘러앉아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현장
마담의 지시하에 썰고, 절이고, 담그며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꽃이 핀다. 이것이 진정한 살롱의 포스
많은 직장인들이 이모작 라이프를 꿈꾸지만 금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데
몽) 사실 주다살롱 시작하는 데 마미론 받은 거예요.
영) 전에 같이 밥 먹는데 몽이 기력이 떨어져 보이더라구. “오늘 왜 그러냐?” 그랬더니 어제 6시까지 회사일 하고, 7시부터 두 시간 영어학원 수업 듣고, 인천 가서 12시까지 술 마시고, 새벽 3시까지 물건 만들고선 출근했단 거야.
몽) 그리고 출근해선 포도당 한방 딱 맞고! 당 떨어져서 안되겠더라구.
영) 저는 몸은 상하지 말고 일하자는 주의인데-
몽) 몸도 생각해야 되는데, 일단 약속한 건 지켜야 하니까. 내가 피곤하고 못 자도 일단 지킬 건 지켜야겠다, 그런.
영) 아, 그리고 몽마담은 직장을 옮겼거든요. 회사일이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칵테일도 배우러 다니고, 가양주 가서 발효주 수업도 듣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
몽)(대뜸)많죠! 친구가 저한테 호를 하나 지어줬어요. ‘봇짐’ 몽마담. 맨날 양손에 바리바리 짐 들고 다니니까. 저번엔 혼자 장보다 버릴 뻔 했어. 백팩에 파인애플 3개를 넣었는데 파인애플 꼬다리 때문에 가방은 안 잠기지, 손에는 계란 한판에 또 뭐랑 뭐랑. 아 집어 던지고 싶더라고, 열 받아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또 이상하게 겹칠 땐 회사 일에 주다살롱 일에 개인사까지 막 다 겹치거든요. 그럴 땐 즐거우려고 시작한 건데 너무 힘들구나, 내가 너무 벌렸구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 뭐 이것 또한 지나가리. 결국엔 다시 좋아지더라구요.
영) 처음에는 “이거 왜 안 퍼져” 엄청 답답한데, 어느 한 순간 퍼지기 시작하면 그 속도는 막힌 게 그냥 확 뚫리는 느낌! 몽마담은 인복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그게 활동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확 터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차가 없는 몽마담은 택시와 튼튼한 팔다리를 이용해 재료를 공수한다
인터뷰 날도‘장 보느라 좀 늦는다’는 몽마담을 다소곳이 한옥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벌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우렁찬 그녀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빨리 사람, 여기 힘쓸 사람!”
등에는 백팩, 양손엔 트렁크 가방과 비닐봉지, 가슴팍엔 박스를 끌어안고 호령하는 몽마담
화들짝 놀란 인터뷰어들은 맨발로 뛰쳐나가 그녀의 지시대로 일사분란하게 짐을 날랐다
‘노동착취’는 이렇게 이루어지나 보다
메뉴 선정부터 워크샵 컨셉까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내나?
영) 둘 다 바빠서 자주 보진 못하는데 만나서 회의해요. 회의하는 게 즐거워. 얼마 전에도 두 시간 회의하는데 30분을 하이파이브만 한 것 같애.
몽)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짜내는 튜브가 있어. 퐁퐁 나와.
영)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끼리 신나면 됐다.
몽) “완전 좋다, 좋다” 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이미지나 공지글이 참 센스있더라
몽) 주다살롱 조직도에 있는 디자인팀 안실장한테 컨셉 잡아서 이미지랑 문구랑 보내요. 제 취향이 워낙 뚜렷해서 안실장이 작업해오면 한 3번 정도 까요. 다시, 다시, 다시! 그렇게 나오는 결과물들이죠.
영) 페북 포스팅에 신경 쓰는 건 같은 음식이라도 이렇게 예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우리가 고생해서 만들었잖아요. 근데 잘 모르는 분들은 우리제품을 선물 받고도 “어, 고마워”하고 그냥 툭 쳐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냥 지나다니는 음식이 되는 게 아까운 거예요.
몽) 허투로 먹을 수 없고!
영) 농부가 쌀알을 못 버리듯이.
그밖에 벌이고 있는 일은 따로 없나?
몽) 연말에 지금 이곳, 한옥 게스트하우스 ‘이랑’을 인수했어요. 여태까진 주다살롱의 작업공간이 따로 없었는데 이제 처음으로 생긴 거죠. 워크샵을 자주 할 거예요. 또 마당 텃밭에 애플민트 같은 허브 키워서 즉석에서 뽑아가지고 웰컴드링크에 넣어볼까도 하고. 여러 구상이 많아요. 이 공간이랑 주다살롱이 결합돼서 할 수 있는 이벤트들. 일일 찻집처럼 ‘일일 주다살롱’ 열어 낮엔 차 팔고, 저녁엔 술 팔고 하루 종일 주다살롱 상품으로 운영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
영) 그리고 저 텃밭은 외부인에게.
몽) 소작농 모집을 했어요. 이미.
영) 소작농들은 오면 흙부터 파야 돼. 흐흐
‘이랑’과 두 마담을 공개합니다 게스트하우스 겸 주다살롱의 아지트가 된 이랑의 전경. 아담한 마당이 퍽 운치 있다
거침없는 말빨과는 달리 사진빨을 걱정하던 두 마담의 실물도 살짝 공개
주다살롱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영) 실패해도 좋은 우리 놀이터? 지난 번엔 쿠키 만들려고 밤 깠다가 그 껍질을 끓여봤어요. 맛이 어떨까, 어디 응용해볼 수 있을까 싶어서. 근데 맛이 진짜 너무 이상해. 그럼 “이건 실패했어!” 그걸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무조건 완벽해야 되고, 성공해서 인정받아야 된다기보단 나란 사람이 뭔가를 발산했을 때 그 결과에 상관없이 내놓을 수 있는 곳.
마지막 질문. 앞으로 주다살롱이 어떤 곳이 되길 꿈꾸나?
몽)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됐음 좋겠어요. 사는데 지치고 찌들어도 여기 와서 그냥 술 한잔, 차 한잔 하면서 쉬는. 소규모로 즐거운 모임도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살롱이.
영) 왜, 직장인들은 꿈꾸잖아요. 퇴근시간까지 바짝 일하고, 푹신한 소파가 있는 작은 바에 가서 지인들과 편하게 보내는 시간. 그런 거. 뭐 이름만 남든, 하나의 공간이 되어 잘 되든, 주다살롱이란 이름 아래선 그런 분위기가 돌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됐음 좋겠어요.
몽) “우리 오늘 어디 갈까?” “주다살롱 갈래!” 그럴 수 있는 곳. 오늘 거기서 누가 공연하나? 오늘 거기서 뭐 전시하나? 소소하지만 항상 뭔가 있는 곳. 그런 공간.
영) 어우. 격하게 말한 것치곤 너무 훈훈하게 마무리 된다~
인터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핑퐁처럼 주고받는 두 마담의 입담에 얼이 쏙 빠졌다. 3년 넘게 주다살롱을 꾸려가면서도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환상의 짝궁, 최강 케미. 그녀들은 건강하고 흥이 넘쳤다. ‘마담’스런 포스에 ‘언니’같은 편안함, 그리고 걸진 농담 속에서도 번뜩이던 올곧은 생각들. 아마도 이런 게 진정한 각이겠지. 그녀들의 목표처럼 “술과 차로 지구정복”할 때까지 주다살롱이 그 자리에 있기를 응원해본다.
© 글/사진 TBWA 0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