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이4.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 @서울 이태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커피와 차를 테이크아웃 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일상 속의 단어, ‘테이크아웃’. 그런데 만약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동시대의 예술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8년째 드로잉(drawing)을 전파하고 있는 곳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처음 온 사람들은 기필코 반하게 되고 만다는 그곳,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 인터뷰는 2014 5 14일 수요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되었습니다]



 

 

4부


‘동네’라는 단어를 꽤 여러 번 이야기 했다. 

왜 여행을 하다 보면 관광지가 아니라 골목 속을 다니고 싶잖아요. 한국의 문화유산 중에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동네’에요. 동네에는 엄청난 문화 자원이 있을 뿐 아니라, 거기서 살아온 저희의 기억이 있잖아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운영하면서부턴 저희의 삶이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그전엔 동네에 누가 사시는지도 모르고, 그분들도 저희가 뭘 하는지 몰랐는데 이런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오픈을 하고 나니까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알만한 분들이 “나 니네 뭔지 알 것 같애” 하고 쫙 모이신 거죠. 자꾸 들리셔서 이 동네에 누가 들어올 거래, 뭐가 들어올 거래, 그런 새로운 소식들을 물어다 주시기도 하고요. 네트웍이 스물스물 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굉장히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그러면서 별별 전시를 다 했죠. 


동네와 관련된 전시도 있었나?

<이웃의 미학>이라는 프로젝트에서 전보경 작가는 이 동네의 20개 상점을 다 인터뷰하고 다녔어요. 그리고 그 가게들에 자기 작품을 하나씩 물물교환했어요. 그러니까 전시할 때 그 상점분들이 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보러 오시더라고요. 또 전 계속 여기 사니까 전시 후에도 그 가게들에 계속 가면서 “어, 작품에 먼지 탔어요~”하고 관리도 하게 되고요. 예술이 뭐 다른 차원에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 있는 거죠. 

또 <사소한 조정/ 유령>이란 전시에서는 ‘고스트 투어’라고 해서 이태원을 돌며 미군들이 사건을 일으킨 장소를 방문하러 다니는 것도 했어요. 런던에서 한 작가를 초빙해서 한국작가가 협업했는데 이방인이의 시선이 같이 한 거죠. 그런 주제는 재미있고 열광할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렇게 한 전시, 한 전시, 그 주제가 저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되게 크다는 걸 제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공간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 예술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삶에 착착 밀착이 되니까. 도시는 누군가 뚝딱 만드는 게 아니니까 우리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특히 그 주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그러면 도시의 비전이, 동네의 비전이 보이는 거죠. 


동시대의 일반대중 혹은 예술가에게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예술가의 에너지가 충만해있는 공간. 근데 예술가라고 해서 나와 먼 ‘그들’이 아닌, 한 공간에 머무르는 실체가 있는 예술가 말이에요. 사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무엇이 됐으면 좋겠다는 비전 자체가 없어요. 그랬으면 아마 간판을 굉장히 크게 걸었을 거예요. 대신 제가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된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다윗이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상대해 싸울 수 있었던 건 다윗이 양치기여서였대요. 양을 돌보며 늑대들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해 매일 한 일이라고는 돌 던지는 것이었다는데, 그게 어느 날은 거인을 쓰러뜨린 한 방이 된 거죠. 다윗의 삶 속엔 이미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준비되어 있었던 거예요. 반복과 연습을 통해서. 집요하게, 배짱 있게. 그냥 심심해서 던지는 돌이 아니라 뭔가를 생각하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생리도 그런 것 같아요. 이 종이 하나, 이 그리는 초안 하나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런데 누군가는 그걸 열과 성을 다해서 이사까지 와서 두 달간 밤 새서 작업하는 거고, 어떤 기획자는 그 드로잉이 너무 훌륭하다고, 훌륭해질 수 있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거죠. 인터뷰하고, 질문하고, 계속 수정과 보완을 요청하면서 그렇게 도모하는 거예요. 그럼 그 공간에 계속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을까요. 어떤 날은 관객이 음료 드시다 불쑥 올라와서 예전에 했던 전시에 대해 질문을 하세요. 그럼 깜짝깜짝 놀라요. 목격자가 있는 거예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오픈한 지 벌써 8년째. 시작할 때의 초심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그 당시 생각한 게 드로잉의 중요성이었는데, 지금 8년이 지났지만 그 중요성은 더해진 거 같아요. 정말 중요해요. 우리 모두 각자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의 삶을 대신 만들어주지 않으니까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했잖아요. 저희는 완전 오픈 스튜디오예요. 기획자인 제 방에도 문이 없어요. 이런 공간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대요. 작가에겐 굉장히 불편한 공간이죠. 모든 게 공개된 공간. 작가가 뭘 하든 예약 없이도 언제든지 무단 침입할 수 있는 공간. 고객에게, 방문자에게, 관객에게 주도권을 주는 공간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인 거 같아요. 단지 5,000원짜리 커피를 사고, 서점을 구경하러 왔을 뿐인데, 본인이 주체가 되는 거예요. 단순히 영화 티켓 사듯이 문화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질문을 할 수도 있고, 뭔가 이해가 안되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고요. 여기선 스스로 문화생산자가 될 수도 있고, 가담할 수도 있단 걸 알게 되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드로잉은 아직 미약한 존재인 것 같아요. 이게 아직 초안이기 때문에. 사실 이 공간에서 아무리 열심히 전시하고 홍보해도, 와서 전시를 보는 사람은 한 전시당 만 명 미만이에요. 사람들은 고작 만 명 갖고 문화가 형성될 수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드로잉 한 조각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순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바로 이 드로잉에서 그 문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일단 저희 앞의 드로잉 하나 하나를 최선을 다해서 해보는 거죠. 드로잉은 분명 언젠간 발화될 거니까요. 많이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런 생각과 구상을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여기가 굉장히 작은 공간이고 동네에 위치하고 있으니 저희의 관심은 지금, 여기서, 저희가 가장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데 있어요. 함께 동행하는 거죠. 동행하고, 동거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자세. 그게 테이크아웃드로잉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겐 카페, 누군가에겐 뮤지엄, 누군가에겐 작업실, 누군가에겐 꽃집, 누군가에겐 책방. 4시간의 인터뷰 끝에 확실히 알게 된 건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결코 어떤 하나의 단어로 정의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드로잉 메뉴 한 잔을 앞에 두고 최소연 디렉터의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 새 ‘우주의 기운’에 감싸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듯이, 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 따뜻하고 건강한 에너지가 그녀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각이 아닐까. 이 기운과 생각들이 더 많이, 더 멀리, 끝도 없이 테이크아웃 되기를 바래본다.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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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4.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 @서울 이태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커피와 차를 테이크아웃 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일상 속의 단어, ‘테이크아웃’. 그런데 만약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동시대의 예술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8년째 드로잉(drawing)을 전파하고 있는 곳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처음 온 사람들은 기필코 반하게 되고 만다는 그곳,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 인터뷰는 2014 5 14일 수요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되었습니다]



 

 

3부


1층 정원이 참 아담하고 예쁘더라. 근데 젊은 사람들 가득한 카페 정원에서 동네 할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꽃을 돌보고 계셔서 놀랐다

원래는 주차장이었던 공간을 정원으로 바꿨는데 처음엔 대책이 없었어요. “대체 뭘 어떻게 심어야 하는 거지?” 질문이 생성되는 거죠. 근데 저희는 질문을 좋아하거든요. 질문은 항상 답을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또 신기하게 흙과 에너지를 좋아하시는 동네분들이 저절로 모이시더라고요. 저희가 흙을 막 쌓아 놨더니 굉장히 당당히 흙 좀 달라고 오셨어요. “나 이 흙 좀 쓰겠네. 대신 내가 뭘 심어주지” (웃음) 방아는 그렇게 마을 주민들이 와서 심어주신 건데요, 어떤 의미에선 방아도 드로잉인 거죠. 또 저희 음료에 허브가 들어가는 게 있으면 직접 길러 보기도 하고요. 일부러 ‘이 음료에는 이게 들어가니 이걸 심자’가 아니라, 그냥 우주의 기운을 따라가는 거예요, 그 흐름을.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니까.  





정원 바로 옆 책방도 인상적이더라. 정원과 책방을 함께 ‘ㅊ’이라고 부른다고?

처음엔 이름이 없었어요. 저희 프로그램 중에 키오스크가 있으니까 그냥 키오스크라고 운영했는데, 스웨덴에서 온 한 예술가가 제안을 했어요. 한국에 있는 문화적인 서점인데, 이름이 왜 키오스크냐고. 한글은 ㄱ,ㄴ,ㄷ,ㄹ 너무 아름다운데, 그 중 ㅊ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왜 치읓이에요?” 저희도 똑같은 질문을 했죠. 그랬더니 “ㅊ은 꽃의 ㅊ이기도 하고, 책의 ㅊ이기도 하고, 친구의 ㅊ이기도 하고…” 이렇게 ㅊ이 들어간 단어들을 총총총 얘기하는 거예요. 그 순간 그냥 매료된 거죠. “그래요? 그럼 하죠!” 지금도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그분에게서 계속 메시지가 와요. 그럼 즐겁게 수용하죠. 저희 공간은 제안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모자라니까, 부족하니까 그럴 텐데 저흰 그 결핍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늘 결핍되어 있다고 표현해요. 완성된 예술 형태나 완성된 문화공간, 완성된 어떤 삶의 형태보단 불안정하고 미완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허용하는 좀 릴렉서블한 공간이니까. 그래서 ‘유기체’인 거죠.




<ㅊ chiut>

테이크아웃드로잉 속의 작은 책방이자 골목정원 ‘치읓’. ㅊ은 책/꽃/창/첫/참/친구/찾았다/촘촘히/천천히/착하다 등의 이니셜 약자다. 동시대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서적뿐 아니라 직접 식물을 심고 가꾸는 법을 배우는 플라워/가드닝 워크숍도 만날 수 있다. 



<난센여권>이라는 책을 냈다.

‘난센여권’은 1922년도에 프리드쇼프 난센이라는 사람이 발행했던 여권이에요. 그 사람이 세계 대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지 못한 군인들을 돌려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대요. 그게 성과가 있어서 사회적 움직임이 만들어졌고, 이 편지 형태의 여권 덕에 전쟁포로로 남을 뻔한 어마어마한 수 만 명이 귀향하게 된 거죠. 제가 난민관련 주제를 만난진 얼마 안됐는데,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을 그냥 딱 눈뜨고 보게 된 것 같아요. 초대 메일을 받고 가리봉동에 있는 난민지원센터를 방문했는데 그 이상한 기운이 있는 거예요. (웃음) 거기 활동가분들은 퇴근 후에도 난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주말에도 만나서 어떻게 할지 의논하시더라고요. 여긴 분명 뭔가가 있다! 그게 궁금해서 난민지원 단체의 활동가분들을 존중해드리는 시선으로 인터뷰했어요.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크게 나눠서, 어떤 일을 했길래 지금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하며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앞으론 뭘 하고 싶은지 질문해봤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난민분들을 소개해주셔서 인터뷰의 폭이 넓어졌죠. 



<난센여권 - 난민을 위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권 한 장> 

테이크아웃드로잉 디렉터 최소연과 건축가 최장원이 기획하고 진행한 워크숍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자국에서의 박해와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오는 길 위에 만들어진 난민들의 과거-현재-미래를 담은 인터뷰를 비롯해 난민 지원 기구 활동가들과 인권변호사들과의 인터뷰, 난민을 주제로 한 책과 영화 목록,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에서 난민이 거쳐온 길, 난민을 주제로 삼은 예술가들의 작품 등이 담겨있다. 





책 외에도 난민관련 전시를 한다고?

프리드리쇼프 난센의 ‘난센여권’도 시민 한 사람의 시선 때문에 엄청난 파장이 있었던 거잖아요. 저는 그게 재미있었어요. 제가 개입하고 있는 난민 프로젝트는 굉장히 일상적인,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예술가들이 함께하며 작품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게 발표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요. 사실 난민들이 한국에 와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정말 불편해요. “한국이 정말 당신한테 그렇게 했어요?” 라고 묻게 되죠. 제가 가해자가 된 거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불편한 현실을 영화나 다큐로 볼 때랑, 예술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될 때는 좀 다르잖아요. 그래서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에선 <일상의 실천>이라는 그래픽 아티스트들이 난센여권을 주제로 4개월 간 체류하고 계시고 <난센여권>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전시를 오픈해요 


난민들과 실제로 ‘동행’하고 있다고? 

난민들에겐 한국말을 할 수 있는 한국친구가 있다는 게 정말 엄청난 일인가 봐요. 그래서 출입국 사무소의 인터뷰가 있거나 직업소개소에서 취업하려고 할 때, 혹은 처음 가는 길을 찾아갈 때 그냥 같이 가주는 거예요. 난민들 중엔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으세요. “나를 동정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시는. “나에게 커피 한잔 사주려고 하지 마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어요. 정말 많이 배웠죠. 그래서 도움의 시선이 아니라 동행하러, 정말 그냥 따라가요. 그럼 9시간이 걸리던 인터뷰가 3시간 만에 끝나기도 하고, 직업을 구할 때도 “뭐 해봤는데?” 라고 묻고 관련된 직종으로 추천해줄 수도 있고요. 이게 무슨 거대한 목적을 가진 소셜 프로젝트가 아니라, 제 삶에 관한 관심인 것 같아요. 내가 살고 있는 이 한국과 이 삶의 토양이 조금 더 즐거웠으면 좋겠고, 조금 더 건전했으면 좋겠다는. 누가 누군가에게 함부로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요. 그냥 안타까워하는 것 말고,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으면 좋겠어요. 각자 할 수 있는 게 하나씩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정치인들이, 기업이 혹은 누군가가 세상을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데, 직접 참여했을 때는 완전히 주체의 역전이 일어나는 거고 능동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 능동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4부에 계속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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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4.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 @서울 이태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커피와 차를 테이크아웃 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일상 속의 단어, ‘테이크아웃’. 그런데 만약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동시대의 예술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8년째 드로잉(drawing)을 전파하고 있는 곳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처음 온 사람들은 기필코 반하게 되고 만다는 그곳,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 인터뷰는 2014 5 14일 수요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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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작가들도 카페 레지던시에 참여하더라. 이들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굳이 국내작가, 외국작가를 나누지는 않고요. 테이크아웃드로잉 작가 선정은 고집스럽게 제가 지명을 했던 것 같아요. 우주의 기운으로 못된 지명! (웃음) 외국작가의 경우는 여행 갔다가 전시를 보고 초대했던 경우도 있고, 저희가 외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다시 한국에 초대해서 발표한 경우도 있고요. 또 제가 전혀 모르는 작가인데 지원하는 경우도 많아요. 몇 년 전부터 오픈콜을 열어뒀거든요. 제 지명으로만 하다 보면 새로운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없지 않더라고요. 


오픈콜에 지원하는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것 같아요. 가끔 되게 유명한 분들도 지원을 하세요. 그럼 제가 오히려 “전 못하겠어요 작가님 오시면 전 진짜 힘들 것 같아요” 이러기도 하고. (웃음) 근데 가만 보면 공간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이런 상황 때문에 오시는 것 같아요. 좀 이상하고 특이하잖아요. 본인을 던져야 할 것 같고, 거의 죽어야 나갈 것 같잖아요. (웃음) 사실 작가한테는 되게 힘든 공간이에요. 문도 없고, 작업하는 공간을 사람들이 막 왔다갔다 하면서 쳐다보고. 이렇게 정신 사납고, 이렇게 시끄럽고, 이렇게 사람 많은 공간에서 작가들은 작업 못해요. 근데 이런 저잣거리가 필요한 작가들이 있어요. 어떤 주제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정신 사나운 공간에서 해야만 발화가 되는 거예요. 그럴 때 하는 거지, 모든 작가의 모든 작품이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어울리진 않아요. 어떤 작품들은 단아한 화이트 큐브에 가야 훨씬 더 예쁘죠.


그럼 너무 정신 없고 시끄러워서 힘들어하는 작가들은 어떻게 도와주나?

본인의 지혜가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주말은 사람이 많아서 저도 이어폰 끼고 일할 정도인데, 시간대를 좀 달리 하면 돼요. 저흰 작가분들이 입주하시면 마스터키를 드려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작가테이블이니까 쓰세요”가 아니라 공간을 다 드려요. 작가 약정서에 보면, 저희가 드리는 건 ‘동네’라고 표현해요. 마스터키 드린다는 의미는 들어가면 안 되는 공간이 없다는 얘기고, 24시간이 열려있다는 의미예요. 비밀도 없고요, 원칙과 시스템, 신념? 그런 거 없습니다, 저희는. 그냥 믿어주는 거. 자기 이름 걸고 전시하니까 최선을 다할 거라는 믿음을. 실패? 실패도 많이 했죠. 괜찮아요. 드로잉인데 뭐. 여긴 실패가 허용되는 공간이에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전시는 일반 미술 전시와는 분명 다르다. 관객참여형 전시도 있었고, 작업공간이 오픈 된다는 점에서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관객과의 인터랙티브한 프로젝트들을 작가가 의도한 경우도 있었지만 저희가 일부러 포지셔닝한 경우는 없었어요. 아무래도 카페니까 오픈콜에 지원하는 작가분들이 관객참여형 제안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저희는 카페이면서 또 미술관이잖아요. 그러니까 현대미술, 혹은 예술계에서 지금 작가가 발표하시려는 주제가 중요한가, 혹은 중요치 않더라도 의미가 있는가를 항상 염두에 둬요. 거기에 비중이 크게 있기 때문에 관객이 못 따라오더라도 일단 발표하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예술에 문외한인 관객분들을 위해 작가의 작업 세계가 궁금하다면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문을 꼭 하나씩은 열어두죠. 작가의 메시지를 반복노출 시키는 드로잉 신문도 있고, 작가의 전시에서 나온 저희 카페의 드로잉 메뉴로도 만나실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함성호 작가의 <두 집 사이>라는 전시가 어려워서 이해를 못하셨다 해도 거기서 만들어진 ‘마그마 아카시아’란 음료로만 기억해 주셔도 좋아요. 자꾸 경험의 층이 쌓이는 게 중요한 거지, 한번에 예술이 이해가 되는 건 불가능한 거 같아요.


작가의 전시에서 나온 ‘드로잉 메뉴’라고?

체류작가가 아트테이블을 통해서 첫 신고식을 하면 그때부터 스태프들이 메뉴를 구상해요. 작가 노트 속에서 작품-메뉴를 ‘작품’이라 지칭했다-이 나온 경우도 있어요. 계속 개미 드로잉을 하셨던 연기백 작가는 노트에 ‘폭풍이 오면, 언젠가 때를 만나면 솟구치고 싶다’는 욕망을 적으셨어요. 거기서 ‘폭풍개미’라는 음료가 나왔죠. 또 건축가 메뉴 시리즈가 있는데, 건축가분들은 오시면, “또 다른 건축가 메뉴는 뭐 있어요?” 물으시고 건축가 메뉴만 드시는 분들도 있고요. 아, 이웃집 강아지 때문에 나온 메뉴도 있어요. 체류 중이던 로랑 페레이라란 벨기에 건축가가 공간의 실루엣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메뉴 개발자 눈에 옆집 강아지 폴이 만들고 다니는 공간의 에너지랑 실루엣이 들어온 거죠. 그래서 강아지가 머랭을 매일 훔친다는 스토리로 ‘폴의 머랭공장’이란 저희 대표 메뉴가 나왔고요. 메뉴도 작품이기 때문에 작가를 그대로 해석한 메뉴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래 생명력이 없어요. 근데 개발자가 그 주제에 자기 스토리를 넣으면 그 메뉴는 생명력이 있어요. 물론 정말 맛있어야 되고요. 미술관이지만 카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 시내 어디 커피보다 맛도 중요하고 재료의 질도 중요해요. 




<드로잉 메뉴 Drawing Menu>

체류작가와 테이크아웃드로잉 멤버들이 함께 <아트테이블>을 갖고 주제를 메뉴로 실험하는 기간을 거쳐, 전시시작과 함께 메뉴를 공개한다. 전시 이후에도 레지던시 작가들의 주제를 메뉴로 만날 수 있다. 



돌 맞을 뻔한 전시도 있었다고?

작가분이 성정체성을 주제로 한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 서울에서 남자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전시하셨어요. 유리창에 시트지로 게이바들 이름을 다 공개한 거죠. 또 음악을 틀 수 있으니 시트지를 뜯어서 내는 소음을 사운드로 전시를 한 거예요. 카페 간판은 커다란 레인보우 간판으로 걸고. 동네 주민인 엄마들이 난리가 났죠. 손님들 불만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미쳤다고. “테이크아웃드로잉 드디어 망했구나!” (웃음) 근데 전시를 하면 저희가 작가분이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전시를 하는 거라고 설명드릴 수 있잖아요. 그럼 조금씩 변하는 게 목격되는 거예요. 아들을 데리고 온 어떤 엄마가 “남자도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 근데 엄마는 싫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전 그거면 된 거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이런 전시를 통해서 “그런 전시가 있대”, 이거면 된 거 같아요. 


예술 전공자로서 본인의 작품을 올리고 싶은 생각은 없나?

전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행위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인 거 같아요. 현재는 예술가의 숫자에 비해서 기획자나 기획하는 공간의 수가 너무 부족해요. 불균형이고 결핍인 거죠. 우리가 잘 아는 고흐가 사실 얼마나 외로웠고, 얼마나 불행했어요. 자기 작품을 이해해줄 친구를 찾기까지 별별 사건이 많았지요. 근데 만약 그 시대에 저희 같은 공간이 옆에 있었으면 목격자가 조금 더 있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목격자들이 조금 더 많이 가담했다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지금 막 작품을 발표하는 예술인들에겐 많은 응원이 필요해요. 



3부에 계속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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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4.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 @서울 이태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커피와 차를 테이크아웃 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일상 속의 단어, ‘테이크아웃’. 그런데 만약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동시대의 예술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8년째 드로잉(drawing)을 전파하고 있는 곳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처음 온 사람들은 기필코 반하게 되고 만다는 그곳,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 인터뷰는 2014 5 14일 수요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부





테이크아웃드로잉이란? 

커피, 차, 드로잉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미술전시관 겸 카페. 2006년, 외부의 지원 없이 문화공간을 그 자체로 ‘자가발전’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방식의 브랜드다.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점과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동’점이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디렉터 최소연입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는 여러 명의 스태프들이 있는데, 저는 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왜 ‘테이크아웃드로잉’인가? 

‘드로잉’은 생각의 초안을 그리거나 쓰는 행위를 말하잖아요. 물리적으로 음료를 테이크아웃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개념 같은 것들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직 물리적으로 표현하기 이전의 단계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미술전시관 겸 카페라는 독특한 컨셉의 공간을 한국에 처음 열었다. 혹시 롤 모델이 있었나? 

롤 모델은 오히려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사회에 있는 어떤 결핍, 문화적 공간의 결핍이나 개념의 결핍 때문에 이런 공간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굳이 거창한 문화운동이나 캠페인이 아니어도, 저희 같은 일상적 공간을 통해 문화에 어떤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공간을 예술가에게 작업실로 제공해보자’가 된 거죠.


카페를 예술가에게 작업실로 제공한다고 했다.  그 작가 선정기준은 뭔가?

음… 우주의 기운? (웃음) –농담인 줄 알았는데 농담이 아니었다. 사뭇 진지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우주의 기운’ 이론은 계속되니 지켜보시길- 예술가들을 초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상황’인 것 같아요. 현재 제가 위치한 곳이 2014년 서울 이태원이라면 이런 시간과 공간에 우주의 기운을 빌려서 어떤 사람을 소개할지에 관심이 있어요. 또 초대자가 저희와 물리적으로 동거를 하는 거니까 상상을 해봐요. “이 작가와 두 달간 살 수 있을까?” “살고 싶나?” 작업세계에 궁금증이 드는 작가 혹은 작업과정에 참여했을 때 기획자로서의 역할이 있을 수 있겠다 싶은 작가를 선정하죠. 


잠깐, 방금 예술가들과 두 달간 산다고 했나? 

예술가들에게 두 달간 카페를 작업실로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제공하기 때문에 사실상 두 달간 함께 사는 거나 다름 없는 거죠. 그래서 이름도 <카페 레지던시>라고 했고요. 1년 정도 미리 기획을 해서 매해 봄쯤 예고탄 신문이 나가요. 올해는 어떤 작가분들을 초대할지 공개하고, 저희 공간에 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기대를 갖고 오시는지를 인터뷰해서 관객이 미리 알 수 있게 하죠. 이 신문이 <드로잉 신문>인데요. 사실 작가의 존재는 일반인들에게 거리감이 있잖아요. 직접 가서 “이거 뭐예요?”라고 물어보기엔 어렵고 낯서니 미리 인터뷰한 내용과 작가의 얼굴을 공개하는 거예요. 실물을 자꾸 공개하는 건, 이 공간 안에서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서예요. 저 테이블에서 만난 저 사람이 신문에 나온 그 사람이라고 자꾸 링크를 거는 거죠. 얘기를 걸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카페 레지던시 Cafe Residency>

카페를 예술가의 창작공간으로 두 달 동안 제공하는 프로그램. 카페라는 공적 공간을 매개로 창작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카페 레지던시는 자연스레 대중에게 창작의 과정을 소개하여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을 통한 창작행위에 주목한다. 






작가 입주 전에 <아트테이블>이란 걸 하는데, 입주신고식 같은 거?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작가의 얘기를 들어보고, 직접 질문해보는 거죠. 내부 공동체에서 질문이 생산된다는 건 굉장한 에너지예요. 방문자를 그냥 맞아서 “당신은 작업하세요, 저희는 커피 팔게요”가 아니라, 커피를 팔 때 머릿속에 같은 질문, 예를 들면 “건축감각이 뭘까?” 같은 질문을 하는 거죠. 작가가 체류해 계셔도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건 저희 스태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이해를 하고 관객을 대하는 거죠. 

또 <A노트>라고 해서 작가분들은 체류하시는 동안 모두 일지를 쓰세요. 방식은 본인이 선택하게 해요. 그냥 사진 찍고 날짜를 적어 공개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작가노트를 쓰기도 하고요. 작가가 오늘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 작품 준비의 체크리스트 같은 것들이 공개되는 거죠. 지금 1층에도 전시되어 있어요.









작가들의 애장 도서와 음악 목록 같은 것도 전시해요. 그걸 저희들 언어로는 <키오스크>라고 하는데요. 아까 말한 우주의 기운을 빌려오되, 생명이 있는 우주라고 생각해보는 거죠. 그럼 그 우주의 기운인 작가는 어떤 음악을 들을까, 평상 시에 어떤 책을 보고, 일상 속에선 어떤 공간들을 다닐까가 궁금해지잖아요. 그렇게 ‘사람’으로 이해하면, 작가가 어떤 난해한 주제에 몰입해 계셔도 약간 알 것 같거든요. 그리고 뭐, 다 몰라도 괜찮아요. 일단 그 사람이 매력적이니까 (웃음)





<키오스크 A’ Kiosk>

동시대 문화예술인의 일상 속 책, 음악, 영화 등의 목록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교감하는 ‘예술가의 서재’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책, 음반뿐 아니라 삶의 얼룩이 담긴 사물들을 모아 소개한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우주의 기운’. 꽤 낯선 말인데? 

저희 프로세스가 복잡하다면 복잡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냥 섬세하고 복잡한 우주의 기운에 의해서 흘러갈 뿐이에요. 그 경험을 가장 치열하게 하는 분들은 여행자로 오는 예술가들이시고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어찌 보면 굉장히 미완성인 공간이죠. 이렇게 공사 하다만 듯한 인테리어로 과감하게 끝낸 이유도 이 공간에 에너지를 채우는 건 방문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예요. 처음부터 컨셉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브랜드가 되고 유명해지는 게 아니었어요. 저흰 항상 한 걸음 뒤에 서있고, 예술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거죠. 그래서 에피소드도 많아요. 디자인 잡지 <GRAPHIC> 편집장인 김광철 작가가 레지던시를 할 땐 “테이크아웃드로잉 주인이 바뀌었대!”, “그래픽 편집장이 테이크아웃드로잉 먹었대!” 그렇게 소문이 났어요. (웃음) 근데 저흰 이런 게 재밌어요. 그만큼 뒤에서 작가를 묵묵히 서포트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편집장의 인터뷰 테이블과 에디터들의 동선이 관객에게 노출되고, 잡지사가 잠깐 이사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뿐인데, 공간에 엄청난 변화가 생겨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그런 변화의 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곳이거든요. 



 2부에 계속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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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3. 주다살롱 @서울 북촌

 

 

2014년 대한민국 서울에 살롱이 부활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입담 걸걸, 인상 푸근, 인심은 넘쳐서 탈인 두 여자가 야근하고 술 마시는 단조로운 생활을 생산적으로 바꿔보고자 2011년 겨울 결성했다는 주다살롱. 낮에는 멀쩡한 직장인, 그러나 퇴근 후엔 마담으로 변신해 동네방네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그녀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페북으로만 접하던 이 살롱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술과 차로 지구정복”이 목표인 두 마담을 북촌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이랑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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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다살롱 조직도를 입수했는데, 거의 주다 다단계회사 수준이다

 

) 다국적 문어발 기업을 표방하기 때문에? 흐흐

 

) 살아있는 조직도랄까? 사실 사람은 몇 명 없는데-

 

) 회계팀장 몽, 영업팀장 몽, 공장장 영, 주다잉여인력사무소 사무소장 몽. 하부내용 보면 다 몽, , , , ,, ,영… 조직도는 넓고 사람은 반복.

 

) 난 어느 날 갑자기 해외 지사장도 돼. “나 태국 가려고했더니 , 그럼 태국 지사장!”

 

) 영마담이 어딜 가든 거기가 해외 지사! 알래스카 가면 알래스카 지사장 되는 거고. “그 동네 마트에서 뭐가 괜찮아? 어서 거기 특산물을 보냇!!

 

 

 

조직도에 주다인력사무소는 뭔가?

 

) 사실 뭐 다 개인 인맥이죠.

 

) “뭐, 친구동생이 놀아?

 

) “그럼 걔, ‘주다인력사무소 잉여1!

 

) 신기하게 저희랑 친한 사람들은 다 일을 잘해요. 기본적으로 일당 백. 하긴 일 못하면 우리가 성질 나서 같이 못해.

 

) 사실 작년 5월부터 영마담은 주다살롱에 거의 휴직계를 냈어요. 그래도 제가 나름 인덕이 좋아서.

 

) (한쪽에서 전 부치는 처자들을 가리키며) 지금 저분들도 주다인력사무소 잉여들!

 

 

 

훈훈한 주다살롱 조직도   두 마담을 제외한 인력들의 보수는 담배 한 갑이나 커피 한 잔이다. 그냥 인복이라는 몽마담의 말에

당신이 남 못 챙겨줘 안달인 퍼주는 여자라 사람들이 한번 엮이면 못 빠져 나간다고 반박하는 영마담 

 

 

 

워크샵 명칭이“노동착취 워크샵”이라고 들었다

 

) “좋은 건 마담 먼저”로 시작을 했는데 요즘엔 마담들 몸이 힘들어서. 우리가 우리 손을 못 따라가요. 손이 너무 크니까.

 

) 그래서 요새 몇 달은 병작업을 못했어요. 궁리하다 애들 불러모아 노동착취 워크샵을 열기 시작한 거지. ‘내가 너무 힘들다, 니네가 와서 일 좀 해라’ <뱅쇼줄께 노동다오> 이렇게 해가지구. 요번 겨울 레몬 작업은 다 애들이 했어요. 내가 안 썰었어.

 

) 몽마담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찰리고, 그 밑에 움파룸파들이 필요해.

 

) 그래서 노동착취. 흐흐.

 

 

 

            노동착취 워크샵 포스터  기꺼이 노동력을 제공하러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센스만점 포스터들

 

 

 

노동착취라고 했지만, 지난 번 워크샵 보니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꼬물꼬물 음식 만드는 게 하나의‘놀이’ 같더라.

 

) 다행인 게, 기본 바탕이 남과 어울리는데 어려움 없는 분들이 오니까. 난 그냥 뭘 좀 먹여서 분위기 좋게좋게 만들어 놓고, 그 담에 상만 깔면 자기들끼리 너무 잘 노니까.

 

) 주다살롱 1주년 때, 우리끼리 축하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나온 게 워크샵이에요. 페이스북 주문자도 처음엔 다 알음알음이다가 그때쯤엔 점점 우리가 모르는 분들도 많아지던 때라.

 

) 우리가 하는 작업을 공개하자! (강조)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 처음 워크샵 할 땐 “올까?” “될까?” 했죠. 유자차, 레몬차 만들고서 병에 붙이는 라벨을 크레파스로 직접 만들게 시켰는데, 다들 너무 잘 하고 재밌어하는 거예요.

 

) 사실 워크샵도 적자예요. 사람들 먹을 것 내놓고, 각자 만든 걸 2병씩 나눠주고 하니까 남는 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저희가 좋아서 하는 행사.

 

 

 

 

 

주다살롱 워크샵  현장중계   회사 끝나고 달려온 직장인부터 아이를 데려온 가족까지 한자리에 둘러앉아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현장

마담의 지시하에 썰고, 절이고, 담그며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꽃이 핀다. 이것이 진정한 살롱의 포스

 

 

 

많은 직장인들이 이모작 라이프를 꿈꾸지만 금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데

 

) 사실 주다살롱 시작하는 데 마미론 받은 거예요.

 

) 전에 같이 밥 먹는데 몽이 기력이 떨어져 보이더라구. “오늘 왜 그러냐?” 그랬더니 어제 6시까지 회사일 하고, 7시부터 두 시간 영어학원 수업 듣고, 인천 가서 12시까지 술 마시고, 새벽 3시까지 물건 만들고선 출근했단 거야.

 

) 그리고 출근해선 포도당 한방 딱 맞고! 당 떨어져서 안되겠더라구.

 

) 저는 몸은 상하지 말고 일하자는 주의인데-

 

) 몸도 생각해야 되는데, 일단 약속한 건 지켜야 하니까. 내가 피곤하고 못 자도 일단 지킬 건 지켜야겠다, 그런.

 

) , 그리고 몽마담은 직장을 옮겼거든요. 회사일이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칵테일도 배우러 다니고, 가양주 가서 발효주 수업도 듣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

 

)(대뜸)많죠! 친구가 저한테 호를 하나 지어줬어요. ‘봇짐’ 몽마담. 맨날 양손에 바리바리 짐 들고 다니니까. 저번엔 혼자 장보다 버릴 뻔 했어. 백팩에 파인애플 3개를 넣었는데 파인애플 꼬다리 때문에 가방은 안 잠기지, 손에는 계란 한판에 또 뭐랑 뭐랑. 아 집어 던지고 싶더라고, 열 받아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또 이상하게 겹칠 땐 회사 일에 주다살롱 일에 개인사까지 막 다 겹치거든요. 그럴 땐 즐거우려고 시작한 건데 너무 힘들구나, 내가 너무 벌렸구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 뭐 이것 또한 지나가리. 결국엔 다시 좋아지더라구요.

 

) 처음에는 이거 왜 안 퍼져엄청 답답한데, 어느 한 순간 퍼지기 시작하면 그 속도는 막힌 게 그냥 확 뚫리는 느낌! 몽마담은 인복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그게 활동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확 터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차가 없는 몽마담은 택시와 튼튼한 팔다리를 이용해 재료를 공수한다

인터뷰 날도‘장 보느라 좀 늦는다’는 몽마담을 다소곳이 한옥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벌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우렁찬 그녀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빨리 사람, 여기 힘쓸 사람!

등에는 백팩, 양손엔 트렁크 가방과 비닐봉지, 가슴팍엔 박스를 끌어안고 호령하는 몽마담

화들짝 놀란 인터뷰어들은 맨발로 뛰쳐나가 그녀의 지시대로 일사분란하게 짐을 날랐다

‘노동착취’는 이렇게 이루어지나 보다

 

 

 

메뉴 선정부터 워크샵 컨셉까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내나?

 

) 둘 다 바빠서 자주 보진 못하는데 만나서 회의해요. 회의하는 게 즐거워. 얼마 전에도 두 시간 회의하는데 30분을 하이파이브만 한 것 같애.

 

)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짜내는 튜브가 있어. 퐁퐁 나와.

 

)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끼리 신나면 됐다.

 

) “완전 좋다, 좋다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이미지나 공지글이 참 센스있더라

 

) 주다살롱 조직도에 있는 디자인팀 안실장한테 컨셉 잡아서 이미지랑 문구랑 보내요. 제 취향이 워낙 뚜렷해서 안실장이 작업해오면 한 3번 정도 까요. 다시, 다시, 다시! 그렇게 나오는 결과물들이죠.

 

) 페북 포스팅에 신경 쓰는 건 같은 음식이라도 이렇게 예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우리가 고생해서 만들었잖아요. 근데 잘 모르는 분들은 우리제품을 선물 받고도 , 고마워하고 그냥 툭 쳐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냥 지나다니는 음식이 되는 게 아까운 거예요.

 

) 허투로 먹을 수 없고!

 

) 농부가 쌀알을 못 버리듯이.

 

 

 

그밖에 벌이고 있는 일은 따로 없나?

 

) 연말에 지금 이곳, 한옥 게스트하우스 이랑을 인수했어요. 여태까진 주다살롱의 작업공간이 따로 없었는데 이제 처음으로 생긴 거죠. 워크샵을 자주 할 거예요. 또 마당 텃밭에 애플민트 같은 허브 키워서 즉석에서 뽑아가지고 웰컴드링크에 넣어볼까도 하고. 여러 구상이 많아요. 이 공간이랑 주다살롱이 결합돼서 할 수 있는 이벤트들. 일일 찻집처럼 ‘일일 주다살롱’ 열어 낮엔 차 팔고, 저녁엔 술 팔고 하루 종일 주다살롱 상품으로 운영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

 

) 그리고 저 텃밭은 외부인에게.

 

) 소작농 모집을 했어요. 이미. 

 

) 소작농들은 오면 흙부터 파야 돼. 흐흐

 

 

 

 

이랑과 두 마담을 공개합니다   게스트하우스 겸 주다살롱의 아지트가 된 이랑의 전경. 아담한 마당이 퍽 운치 있다

거침없는 말빨과는 달리 사진빨을 걱정하던 두 마담의 실물도 살짝 공개

 

 

주다살롱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 실패해도 좋은 우리 놀이터? 지난 번엔 쿠키 만들려고 밤 깠다가 그 껍질을 끓여봤어요. 맛이 어떨까, 어디 응용해볼 수 있을까 싶어서. 근데 맛이 진짜 너무 이상해. 그럼 “이건 실패했어!” 그걸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무조건 완벽해야 되고, 성공해서 인정받아야 된다기보단 나란 사람이 뭔가를 발산했을 때 그 결과에 상관없이 내놓을 수 있는 곳.

 

 

 

마지막 질문. 앞으로 주다살롱이 어떤 곳이 되길 꿈꾸나?

 

)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됐음 좋겠어요. 사는데 지치고 찌들어도 여기 와서 그냥 술 한잔, 차 한잔 하면서 쉬는. 소규모로 즐거운 모임도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살롱이.

 

) , 직장인들은 꿈꾸잖아요. 퇴근시간까지 바짝 일하고, 푹신한 소파가 있는 작은 바에 가서 지인들과 편하게 보내는 시간. 그런 거. 뭐 이름만 남든, 하나의 공간이 되어 잘 되든, 주다살롱이란 이름 아래선 그런 분위기가 돌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됐음 좋겠어요.

 

) “우리 오늘 어디 갈까?” “주다살롱 갈래!” 그럴 수 있는 곳. 오늘 거기서 누가 공연하나? 오늘 거기서 뭐 전시하나? 소소하지만 항상 뭔가 있는 곳. 그런 공간

 

 

) 어우. 격하게 말한 것치곤 너무 훈훈하게 마무리 된다~

 

 

 

인터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핑퐁처럼 주고받는 두 마담의 입담에 얼이 쏙 빠졌다. 3년 넘게 주다살롱을 꾸려가면서도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환상의 짝궁, 최강 케미. 그녀들은 건강하고 흥이 넘쳤다. ‘마담스런 포스에 언니같은 편안함, 그리고 걸진 농담 속에서도 번뜩이던 올곧은 생각들. 아마도 이런 게 진정한 각이겠지. 그녀들의 목표처럼 술과 차로 지구정복할 때까지 주다살롱이 그 자리에 있기를 응원해본다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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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3. 주다살롱 @서울 북촌

 

 

2014년 대한민국 서울에 살롱이 부활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입담 걸걸, 인상 푸근, 인심은 넘쳐서 탈인 두 여자가 야근하고 술 마시는 단조로운 생활을 생산적으로 바꿔보고자 2011년 겨울 결성했다는 주다살롱’. 낮에는 멀쩡한 직장인, 그러나 퇴근 후엔 마담으로 변신해 동네방네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그녀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페북으로만 접하던 이 살롱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술과 차로 지구정복”이 목표인 두 마담을 북촌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이랑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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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다살롱이란?

술을 사랑하는 몽마담과 차를 사랑하는영마담이 2011년 결성, 정직한 재료와 철저한 가내수공업으로 술과 차를 만들고 팔기도 하는 곳 

페이스북을 거점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 함께 요리하는 오프라인 워크샵도 열고 있다 . (자매품 피클, 쿠키, 치즈 등도 있음)

 

 

 

마담들 소개 먼저

 

몽마담) 안녕하세요, 주다에서 주()를 담당하고 있는 몽마담입니다.

 

영마담) 저는 영마담이구요. 남은 다(), 차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하 몽마담=, 영마담=)

 

 

 

왜 몽마담, 영마담인가?

 

)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제 이름이 모희정이라 친구들이 부르던 별명이 이었거든요.

 

) 저는 최영인인데 이상하게 최마담은 싫더라구요. 그래서 영인에서 을 따와서 영마담.

 

 

 

두 마담은 어떤 사이인가?

 

) 몽마담이랑은 직장에서 만났구요. 같은 층에서 취향 맞는 사람들끼리 야근하다 보니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열한시 반까지 빡세게 일하고 슈퍼 마감칠 때 가서 왕창 사다 술안주 하고 차안주 하고 그러다 가까워졌죠.   

 

 

 

주다살롱은 어떻게 태어났나?

 

) 처음엔 술이랑 차 마시는 걸로 시작됐어요. 근데 둘 다 성향이 너무 소모적인 건 마음에 안 들고, 또 몽이 실험정신이 강해요. 술안주로 자몽을 먹잖아요. 그러다 술이 남으면 거기에 자몽을 담가서 자몽술을 만들고-

 

) 술을 붓자! 이렇게 된 거지. 들이 붓자! 차에 술 부어도 맛있을 것 같고.

 

 

) 홍차에다 꿀 절인 사과를 넣는다던가. 이런 아이디어 낼 때 시너지가 너무 잘 맞는 거예요.

 

 

) 처음엔 우리끼리 먹으려고 만들었는데, 맛이 있으니까 회사에서 행사할 때마다 부탁하고, 선물하겠다고 패킹도 부탁하고.

 

) “이 정도면 팔아라” 부추기고.

 

) 정말 친한 직원들이 “야, 니네 이거 팔아! 왜 안 팔아?” 이렇게 다그친 것도 있어요. (머뭇머뭇)팔아도 될까? 사주시겠습니까?” “(버럭)살게!!!

 

 

주다살롱이란 이름이 이쁘다. 누가 지었나?

 

) (대번에) 저요.

 

) (코웃음) 정말 기억은 미화돼. , 당신이 정말 되도 않는 이름을 많이 갖다 붙였거든?

 

) 원래 후보가 많아야 돼.   

 

) 차라리 술 ‘주’, 차 ‘다’로 하자. 분명히 동시에 나왔는데 무조건 자기가 했대. 인터넷에서 ‘살롱’을 검색했는데, 뜻이 너무 좋은 거야. 17~18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문인들, 예술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응접실! 캬아~ 그래서 ‘살롱’으로 하자!

 

 

 

, 술은 물론이고 쿠키에 치즈까지… 만드는 품목이 다양한데, 기준이 있는지?

 

) 저희가 만드는 건 정말 사소한 것들이에요 “어? 저거 드라마에서 봤는데, 영화에서 봤는데, 만화책에서 봤는데, 괜찮아 보여!” 그러면 실제로 따라 해보는 거죠.

 

) 치즈 만들다가도 “치즈에 망고를 넣으면 더 맛있지 않을까?” 그럼 바로 망고 말린 걸 넣어서 달달한 씹히는 치즈도 만들어보고-

 

) 일단 우리가 궁금하거나, 신기한 것들에 도전해요. 정석의 레시피가 있다면 저희는 거기서 어떻게든 하나 이상은 바꿔보는 편이에요. 그런 게 재미있으니까.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은데

 

) 처음에는 병 살 줄도 몰라서, 오뚜기 스파게티 소스 병 있죠? 그거 재활용했어요. 천도복숭아로 차, , 3종 세트 만들어서 오뚜기 병에 담아서 팔고. 아아,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다. 정말 초보처럼.

 

) “재활용 좋다” 그런 것도 있어서. 주변 친구들한테 니들 병 있으면 좀 달라고 해서 받아서 쓰고 했죠.

 

) 그럼 천원 깎아주기도 하고. 

 

) 근데 원래 병 안에 배인 냄새가 잘 안 빠지더라구요. 그래서 다이소에서 비싼 돈 주고 사서 하다가-

 

) 공장을 발견했어!

 

) , 병 공장이 있어, 한 박스 사자! 그때부터 일이 커진 거지.

 

 

 

 

              주다살롱의 제품 컬렉션   재료손질부터 라벨작업까지 모두 철저한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바른 먹거리

                    제철과일만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주다살롱의 제품은 항상 리미티드에디션이라고

 

 

 

어디서 파나?

 

) 처음엔 아는 사람들끼리 나눠먹다가, 페이스북으로 한 병씩 팔다가, 이태원 계단장 같은 프리마켓에도 나가요. 계단장 나가며 잔으로 파는 데 눈을 뜬 거죠. ! 잔으로 파니까 돈이 남아!!!

 

) 그전엔 안 남았어요.

 

) 오히려 적자였지.

 

) 근데 이태원장 가도 ‘우리 걸 많이 팔아야지’보단 돌아다니면서 구경 많이 해요. 꼭 음식이 아니어도 새로운 게 되게 많거든.

 

) 그리고 항상 옆 팀을 공략해서 친해져. 매달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재미.

 

) 정말 다양한 특색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거기서 아이디어도 얻고, 좋은 에너지도 많이 얻고. 또 그분들이 소문도 많이 내주시고.

 

) , 인터넷에 ‘이태원’, ‘주다살롱’ 이렇게 검색하면 모르는 블로그에 내 사진 막 떠다니더라.

 

) 떠다닐 수 밖에 없어. 나는 가도 조용히 이 모습인데, 몽은 중국풍 빨간 옷 입고 맨 앞 계단에 서서! (쯧쯧)누가 봐도 찍을 수 밖에. 그 사진 보면서 “아, 난 안 가길 잘했다.

 

) , 내가 부끄러워?

 

) 당신을 사랑하지.

 

 

 

 

       주다살롱 프리마켓 출동  이태원 계단장에서 낮술을 팔고 있는 몽마담. 이날 수많은 커플들이 낮술에 취해 이태원을 배회했단다

 

 

 

 

주다살롱만의 신념이나 고집 같은 게 있나?


) 유자차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한 병씩은 꼭 저희 몫을 남기고 팔아요. “만들어서 제일 잘된 건, 우리 꺼!” 빼놓고 파는 거죠.

 

) 싸구려 재료 쓰면 많이 남겠지만, 우리가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려고 시작한 거니까. 재료는 무조건 좋은 걸 사고, 혹시 남으면 우리가 다 맛있게 먹어요.

 

) 돈 벌려는 거 아니니까. 그래서 캐치프라이즈도 “좋은 건 마담 먼저”.

 

) 프리마켓이나 온라인 판매 하다 보면 이것저것 많이 보게 되는데, 좋은 거 쓰는 줄 알았는데 아닌 사람들도 의외로 꽤 있어요.

 

) 재료를 수입산 쓴다, 국산 쓴다 말하는 게 없어. 물건 팔아 수익금으로 사회공헌 한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우리는 사회공헌 한다고 말은 안 하지만-

 

)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회공헌이다!

 

) 국산으로 좋은 걸 쓰고 개인한테 파는 거 자체가 사회공헌이다. 어설픈 사회공헌 하지 말고 그냥 우리 갈 길을 가자.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재료는 어떻게 고르나?

 

) 사람들은 레몬은 다 수입산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나거든요. 제주도서. 수입산은 찬물에 담가놓으면 왁스가 녹아서 하얀 게 둥둥둥 떠다니는데 제주도 산은 먼지가 떠요.

 

) 수입산 씻다 보면 진짜 내가 이걸 먹는 게 찝찝해.

 

) 영마담은 그래서 수세미로 막 닦고 그랬거든요. 그 다음에 식초 넣고 또 닦고. 내가 다 벗겨지겠다고, 영양소 다 빠지겠다고 그만 좀 하라고 말릴 정도로.

 

) 우리 먹을 거니까!

 

) 좋은 재료 사면 비싸긴 해도 세척을 이중, 삼중으로 안 해도 되니까 오히려 수고는 덜죠.

 

) 처음엔 설탕도 시중 제품 쓰다가 “이번에는 유기농을 한번 사볼까?” 그럼 공부를 해요. 유기농이 좋다니까 덮어놓고 쓰는 게 아니라, 유기농은 왜 좋은지, 이게 허위는 아닌지 다 알아보고.

 

 

 

재료 구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겠다

 

) 국산 체리는 한번도 본 적도 없고 너무 먹어보고 싶고 궁금한데 배달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가야겠다! 근데 내가 차가 없으니까 친구네 부부를 꼬시는 거지. “우리 평택으로 나들이 갈래? 거기 미군 부대 앞에 햄버거가 그렇게 맛있다네~” 일단 가서 햄버거를 먹였어. 그리고 “이제 어디 가지?” 그럼, (초롱초롱)어머, 바닷가 가는 길에 체리농장이 있네!” 그러고 끌고 가서 체리 따는 체험하고 몇 박스 사오고.

 

) 재료 찾는 거는 이렇게 한번 딱 경험하면 점점 넓어지는 거 같아요.

 

) 그리고 한번 좋은 거 쓰면 못 바꾸고.

 

 

 

 

- 2부에 계속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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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 2 음란소년 @ 서울 홍대 

 

 

 

인디 음악계에 떠오르는 감성 변태이자 자칭 외박을 부르는 목소리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대놓고 음란하다 하여 이름도 음란소년. 어쩌다 듣게 된 그의 대표곡,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 말랑말랑 달콤한데 뜯어보면 19금이고, 자극적인데 부담스럽지 않고, 굉장히 야한데 기분은 나쁘지 않은 오묘한 곡. 들을수록 중독되는 그의 음악에 홀려 그의 서식지이자 출몰지인 홍대행을 결심, 우리 지금 당장 만나요 - 


 


 

2부

  

본격 노래 질문. 음란소년이 좋아하는 음란소년의 노래가 있다면?  

 

<두시까지만>, 음악적으로 좋아하는 곡이예요. 자장가 같은 느낌. 자기 전에 듣기 좋은 곡이죠.  

 

 

음란소년을 대변하는 곡이 있다면?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가 아닐까요. 콘서트장에서도 가장 열광적인 반응이 오는 곡이예요. 아무래도 퍼포먼스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웃음)  


음란소년이 제공한 음란소년의 대외활동 포착 사진들

위 사진이 바로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 명곡을 온몸으로 시현하시는 현장 되겠다   

 

 

주옥 같은 가사,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어떻게 쓰는 건가

 

사실 열심히 쓴 건 없어요. 빈둥빈둥하면서 썼죠. 앉아서 쓴 가사는 거의 없고, 걸으면서, 침대 누워 있을 때, 딴짓 하면서 쓴 게 많죠. 저는 곡을 거의 다 에버노트로 써요. 걷다가 곡이 생각이 나면 녹음해놓고, 가사가 생각나면 써놓고. (스마트폰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기기가 없을 땐 확실히 곡을 잘 못썼었어요. 지금은 너무 수월하죠. 기기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는 편이예요. 아이디어는 순간순간 되게 많은데 문제는 그걸 어떻게 잡느냐 였거든요. 지금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잡게 된 셈이니까요. 무엇보다 가사는 그렇다치고 멜로디는 10초만 지나도 생각이 안나거든요. 바로바로 메모해두지 않으면 잊혀지는 거죠. (오늘의 교훈: 메모를 잘 하자)  

 

 

음악에 대한 얘기 없이 음란소년을 말할 수 없다

음란소년이 직접 소개하는 그의 대표곡들!

 

이땅의 수많은 오빠들 중 한명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담은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

현대인들의 피상적인 인간관계와 익명성을 노래한 타이틀 곡 <이름이 뭐였더라>

2012년 대선정국을 바라보는 음란소년의 혜안을 엿볼 수 있는 곡 <사랑은 보수 섹스는 진보>

소녀들의 귀가본능을 흔들어놓을 <두시까지만>

가요 역사상 가장 슬픈 발라드곡으로 기록될 <약속이 취소됐어>

여성들이 음란소년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는 <Roman Realizer>

음란소년의 강력한 돌직구송 <나와 함께 자요>

 

 

가사와 삶의 싱크로율?

 

경험반 상상반 (소리반 공기반 같은 느낌?) 

제 곡 중에 <두시까지만>이라는 곡이 있는데요. 한번은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밤12시쯤 회가 너무 먹고 싶은데 그럼 우리 딱 두시까지만 먹고 가자, 라고 된 거죠. 그때 이상하게 두시까지만에 꽂혀서 그것만 제목으로 발췌해서 곡을 쓴 거구요.

 

 

뭐 하나 놓치는 게 없는 파리지옥 같으시다

 

제겐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다 중요해요.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라는 곡도 오빠, 나 이러려고 만나?” 이 문장 하나에서 모든 게 시작되는 거죠. 실생활에서 자주 쓰는데 가사나 소설에서 잘 안쓰는 문장에 관심이 많아요. 

 

 

원래 음악을 하고 싶었나?

 

작곡에 관심이 많았어요. 노래는 생각을 못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발을 뺄 수 없는 지경에 와버리긴 했지만장르 불문하고 음악을 좋아했고, 악기도 이것저것 조금 조금씩, 제대로 할 줄 아는 악기는 없어요. 혼자 책 보고, 화성학도 공부하고, 사이트 찾아보고, 곡을 쓰며 보낸 시간이 꽤 됐죠. 음악을 하면서 음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은 한 순간도 없었어요. 다만 버틴 거 같아요. 한달 버티고 또 한달 버티고 그렇게 계속.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외 다른 분야는 생각도 해본 적 없구요. 생계를 위해 알바는 했을지언정.  

제일 상상하기 싫었던 건 죽을 때 아, 그때 내가 음악할 껄 왜 안했지, 하고 있을 제 모습이었던 거죠.

친구들이나 자식들에게 내가 왕년에 이렇게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그런 말 하고 있을 제 자신이 싫어서, 인생이 조금 비루할지언정 하고 싶을 걸 버티면서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 거죠.

 

 

삶의 모토가 있다면?

 

졸리면 자자! 제 생활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 이거예요. 졸릴 때 잘 수 있다는 거.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 오직 인간만이 졸릴 때 안자고, 자고 싶을 때 일어나잖아요. 저는 동물처럼 사는 게 행복해서 졸릴 때 자고 눈 떠지면 일어나요. 알람이 있을 필요가 없죠. 삶의 가장 큰 행복이구요. 실제로 잠을 많이 자요. 밤잠도 많이 자고, 낮잠도 하루에 3~4번 자요. 저에겐 낮잠이 굉장히 중요해요. 잠들기 전이랑 잠에서 깰 때 생각이 많이 나는 편이거든요. 

 

 

가족들은 뭐라고 안하나?

 

가족들은 음란소년에 대해 전혀 몰라요. 그냥 음악을 하고 있다 정도. 사실 밝히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면, 결국 유명해져서 알게 되는 것일 테니,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용돈 쓰세요, 로 무마할 수 있는 상황이 될 확률이 높겠죠. (이 남자, 굉장히 치밀하다)   



같이 무대를 꾸며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

 

아역 연기자들이 성인 연기자로 변신할 때 특별한 작품을 통하듯이 아이돌 가수들이 성인 가수로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할 때 음란소년과 콜라보를 함으로써 인증이 되는 걸 꿈꿔보긴 했어요. 말하자면 성인돌로의 이미지 변신을 위한 등용문이랄까.  



2의 음란소년들에게 한마디

 

재밌게 하면 되는 거 같아요. 해보고 아님 말던가. 

 

 

마지막으로, 음란소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난 잘해! (목적어는 상상에 맡기겠다고 했다)


여전히 신비주의로 가득찬 음란소년, 그를 이루는 조각들 



+ Bonus track 3: 인터뷰어 마음대로 꼽은 음란소년 베스트 노랫말   

 

오늘따라 왜 이렇게 프랑스 요리가 난 하고 싶죠. 잠깐만요. 아직 안 돼요. 에피타이저가 안 나왔어요. 너무 많이 먹진 마요. 디저트도 준비를 해뒀으니. 그런데요. 나 이렇게. 앞치마만 입고 있어도 되나요.

- <Roman Realizer> 가사 中

* 선정이유: 상황 설명 없이 상황이 그려지는 탁월한 묘사력 


+ Bonus track 4: 글로는 담을 수 없는 그의 심오한 음악 세계, 리쓴 앤 리핏      



그와 3시간을 함께 했지만 여전히 우린 그의 본명도, 나이도, 가정환경도, 졸업한 학교도, 자라온 배경도 모른다. 다만,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는지 충분히 느꼈을 뿐. 음란하다 하기엔 너무나 젠틀하시고, 소년이라 하기엔 너무나 농익으신, 그러나 음란소년이 아니고선 그 어떤 호칭도 어울리지 않는 당신이 진정 음란소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당신의 각을 보여주어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

 

다음 각진이 인터뷰 예고

 

음란 다음은 조신한 버전으로. 멀쩡한 직장인 코스프레만으론 만족할 수 없다. 동네방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싸롱을 꾸려 부지런히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모작 라이프를 경영하는 여인들을 만나러 간다.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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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 2 음란소년 @ 서울 홍대 

 

 

 

인디 음악계에 떠오르는 감성 변태이자 자칭 외박을 부르는 목소리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대놓고 음란하다 하여 이름도 음란소년. 어쩌다 듣게 된 그의 대표곡,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 말랑말랑 달콤한데 뜯어보면 19금이고, 자극적인데 부담스럽지 않고, 굉장히 야한데 기분은 나쁘지 않은 오묘한 곡. 들을수록 중독되는 그의 음악에 홀려 그의 서식지이자 출몰지인 홍대행을 결심, 우리 지금 당장 만나요 -  

 


 

1

  

소개는 셀프


인디 음악계의 마광수, 비누향 나는 변태, 외박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 음란소년입니다. 



그 정도는 알고 왔고, 더 밝힐 순 없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아예 정체가 없었으면 좋겠어서, 얼굴도 공개하지 않고 있죠. 본명도, 나이도, 배경도 공개하지 않으려구요. 각자가 상상하는 음란소년의 이미지를 제가 어찌 감히 깨트리겠어요. 음악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이었으면 좋겠고, 뮤지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진도 정면으로 찍으면 곤란한데. (, ~)

 

 

공개할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손 정도? 


 

범상치 않은 손의 자태: 손짓에서 변태가 느껴진다면 내가 잘못된 건가


비누향 나는 변태는 무슨 뜻인가?

 

어느 팬이 붙여준 별명인데요. 자기가 그전에 알던 변태들은 담배 냄새 나는 변태였는데, 저는 비누향 나는 변태인 거 같다고 지어준 거예요. 흡족한 별명이죠. 그래서 비누향 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비누향 나는 향수가 있나고민도 되더라구요. 개인적으로도 향수는 너무 직접적인 것 같고, 바디로션, 섬유유연제의 향기를 좋아해요. 특히 다우니향을 좋아해요

 

 

음란소년의 탄생 설화가 궁금하다

 

재주소년, 커피소년… 소년들이 판을 칠 무렵, 저는 섹시한 컨텐츠에 관심이 많았어요. 소년이라고 하면 순수하고 유약한 이미지가 지배적인데, 한국 특유의 소년이라 불려지는 음악과 섹시한 컨텐츠를 섞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음란을 떠올렸죠. 어떻게 보면 소년과 어울리지 않는 가장 먼 단어이기도 하죠. 사람들도, 가수 이름이 이게 뭐야, 로 시작해서 음악을 듣게 되는 거 같아요.  

 

 

앨범도 딱 음란소년스럽다. 설마 본인 입술인가

 

입술 진을 뽑았어요. 페이스북에 공지를 띄웠죠. 입술 예쁜 분 찾는다고. 아는 디자이너 친구의 친구 입술이 뽑힌 건데 음란한 입술의 조건을 다 갖췄어요. 아랫입술이 도톰하고, 솜털도 적당히 있고, 포인트는 살짝 삐져나온 덧니. (웃음)

 

이것이 바로 소속사도 없고, CD유통도 직접한다는 음란소년의 첫 공식 앨범 <음란소년>

 

 

지난 2012 5 4 <음란소년>을 첫 싱글 음원으로 발표했다고 들었다

 

‘소년’이니까 어린이날 발표하고 싶었는데 공휴일이어서 음원 등록이 안되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전날 발표했죠. 별 큰 야심은 없었고,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한 거예요. 본격 활동은 2012년 겨울 1집 음반 내면서 시작한 셈이구요

 

 

첫 싱글 발표하고 반년만에 앨범 낼 곡을 다 만든 건가?  

 

정규 앨범 씩이나 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본격적으로 하려고보니 아이디어가 주체할 수 없이 떠오르더라구요. 넘쳐나는 아이디어 때문에 이럴 거면 정규 앨범을 내자, 하고 내게 된 거죠. 원래는 4~5곡 해서 EP 음반으로 내려했는데, 너무 생각이 잘 나더라구요.  CD는 발매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음원만 부담 없이 내자 한 건데 팬들이 CD는 왜 없어요? 항의하시길래, CD를 원하면 후원해주세요. 했더니 정말로 후원을 해주시더라구요. 결국 텀블벅을 통해 CD까지 나온 거죠

 

 

별명도 만들어주고, CD도 만들어주는 그 팬들은 대체 누군가?

 

거의 여성 팬들이죠. 그 중에서도 10대가 가장 많아요. (19금 노래도 있건만!)

제 노래가 여성 커뮤니티에서 많이 화제가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남자들은 가입이 안되는 사이트라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웃음)  

 

 

선물도 많이 받을 거 같은데

 

주로 먹을 걸 많이 줘요.  ABC초콜릿부터 마이쮸도 가져다 주고요. 소년이니까. (웃음)  요즘 10대는 참 발랄하더라구요. 포털사이트 지식인에 올라온 질문 중에 음란소년 공연 가서 음란소년 벗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라는 글도 있었거든요. 다행히 그런 참사는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직은…  

 

 

공연의 신, 이승환 콘서트에 게스트 공연도 했다던데?

 

승환님과는 사실 전혀 관계가 없는 사이였어요. 추측이긴 한데, 모 인디 전문 음악 잡지 표지모델로 승환님이 표지 모델로 나왔을 때, 하필 그 잡지에 음란소년 기사가 실렸었거든요. 아마 그 잡지 보시다가 제 음악을 들어보시고 연락을 주신 게 아닐까. 공연에 게스트로 와줬으면 좋겠다, 제의가 왔고, 그래서 무대에 선 거죠.  

 

 

단박에 오케이한 건가?

 

살짝 고민도 했죠. 냉정하게 말해 저는 보컬로서의 정체성을 말하긴 힘든 입장이거든요. 전문 교육이나 트레이닝을 받은 것도 아니니까 가수로서 승환님의 공연 무대에 서는 것에 부담도 있긴 했으니까요. 망신만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는데, 망신을 당할지언정 내가 서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고, 직접 초대해 주신 거니까 영광으로 생각하자 해서, 용기를 낸 거죠. 그렇게 해서 2013년 봄 부산 무대에 섰어요. 재미있는 건 그날 공연하고 나서 승환님이 제 무대에 영감을 받았는지, 19금 콘서트를 해보자,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19일과 금요일이 겹친 달에 서울과 부산에서 19금 공연까지 한 거죠

 

 

이승환의 무대보다 반응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제 공연이 쇼킹하긴 했나봐요. 공연장에서 여보!”를 외치게 하거든요. 제가 내려갈 때도 계속해서 여보!”가 들리니, 승환님이 관객에게 낯선 남자에게 여보라고 부르는 너희들은 뭐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왜 여보라고 하는 건가?

 

제 노래에 오빠에서 시작해서 여보에서 끝난다는 가사가 있어요. 그래서 “Say, 여보!”가 된 거죠.  

 

 

문제의 곡 <음란소년> 가사 中

 

침대에서 시작해서 플로어에서 끝나요

오빠에서 시작해서 여보야로 끝나요

(중략)

서울에서 시작해서 홍콩에서 끝나요

여보야로 시작해서 미쳤어로 끝나요 

 

 

음란한 쪽으로 아이디어가 많은 것 같다

 

누구라도 아이디어가 많을 거예요. 다만 결과물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에 주저하는 거겠죠. 저는 주저함 없이 해버리니까. “Say 여보!”침대에서 미치광이라고 하는 거나, 근데 막상 하니까 다들 좋아하더라구요. 그러다 말로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행동으로 해볼까? 그래서 관객 중에 한분을 직접 무대 위로 불러 만지기도 하죠. (!!) 요즘은 음란소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서 고민이예요. 만지는 것도 약하다고 하거든요. 더 쎄게 뭘 해야하지, 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웃음)  

 

 

 

 

+ Bonus track 1: 현장 보도   

 

테이블이라곤 3개밖에 없는 아늑한 홍대 모 카페에서 접선. 바로 옆테이블에선 성경 공부가 한창인데 음란소년과 음란에 대해 논하자니 어찌나 짜릿한지. 인터뷰만으로도 이미 음란 그 자체였다

 

 

+ Bonus track 2: 음란소년, 뭐 마실래요?    

 

딸기 스무디 마실게요. 전 달콤한 게 좋아요. 술도 좋아하는 라인이 있어요. 맥주는 후치스, 머드 쉐이크, 와인도 모스카토 다스티, 버니니, 말리부 파인애플, 베일리스 밀크, … (이 남자, 담즙까지 달콤할 듯)  

 


이봐 이봐, 딸기 스무디 잡은 손 마디마디. 너무 요염한 거 아닌가.  




- 2부에 계속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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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 1.  김석관 + 서장현 @ 부산 색동길

 

 

 

조용한 주택가 뒷골목이었던 부산 색동길이 감각적인 멋진 가게들로 채워졌다. 변화의 주범은 서핑 용품 편집샵 <안티도트(Antidote)>를 오픈한 청년들. 캘리포니아도 아닌 부산 골목에서 서핑 용품을 판다. 연이어 문을 연 <고사우스(Go South)>도 온전히 서퍼의 꿈으로 완성된 곳.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부산항 앞 창고 건물을 개조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했다

유학파 절대 아님. 부산 사투리 장난 아님. 샵 인테리어 보통 아님. 서핑에 미쳐 제 정신 아님.

한마디로 골때리는 청년들. 그 프로필에 호기심 발동, 부산행 KTX를 탔다.  

 

(featuring; 부산 사투리)

 

3부

 

 

어렸을 때는 뭐가 되고 싶었나

 

) 건축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성적이 안돼서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실제로 인테리어 현장에서 3년 동안 일도 했어요. 그러다 다니던 곳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어머니 소개로 말도 안되는 전산실 근무도 했었죠. 

 

) 저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거든요. 대학을 갔는데, 학교를 제대로 가진 않았어요. 아무나 영화 하는 게 아니니까 어렵잖아요. 제대로 교육은 안 받고,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서핑을 하게 되니까 그걸 영상으로 찍고 싶더라구요. 같이 타던 친구들의 모습을 찍고, 캠코더 같은 거 하나 어떻게 구해가지고 그게 나중에 2009년에 조그맣게 작품을 하나 만들었어요.

지금도 한번씩 저희끼리 그 영상을 보는데 그때 출연했던 친구들 다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월이 지났으니까. 그 친구들이 다 서핑 관련일 하고 살고 있거든요. 다 대표가 되어 있죠. 장비샵의 대표, 바다 근처에서 서핑에 관련된 장비샵, 보드, 이런 것들 위주로. 호주로 이민을 간 친구도 있고, 커피숍 하는 친구도 있고, 결국 다들 자기가 원하는 그림대로 살고 있더라고요. 조만간 찍으려구요.  

 

 

주위에 친구가 많은 것 같다

 

) 돈복은 없지만 사람복은 많은 거 같아요. 이상하게 어른들이 저를 좋아해주시더라구요. 은행 대출 받을 때도 담당하시던 분이 저희 얘기 들으시고 바로 오케이 해주셨구요. (영화 <원스(once)>의 한 장면이다!) 

일도 사람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걸 기획하고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스텝들의 후원도 있었고, 저희가 매장에 없어도 자기들 것처럼 잘 운영하니까 저희는 아예 금고나 요런 거 보지도 않아요. 다 맡겼죠. 직원들이 저희들보다 더 잘해요.저희는 판매를 잘 못해요. 원래 판매를 하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서핑하세요? 어 그럼 얼마 할인해드릴께요. 이 친구들은 설명부터 조리있게 딱딱딱. 오히려 우리보다 브랜드에 대한 정보도 더 많고, 저희가 직원들한테 물어볼 게 되게 많아요. 저희 지금 여기 뭐가 있는지 잘 몰라요 사실은. 저희는 <비욘드 가라지>에 다 올인을 해서 움직이는 상황이라.

 

) 저희가 잘하고 있는 게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같이 일을 하니까 그게 도움이 많이 되죠.

 

) 우리가 하는 스타일은 우리가 다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거든요. 내가 다 못하니까 우리 같이 하자,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하나 뭉치면 큰 그림이 되거든요. 이게 눈앞에 현실화가 됐을 때는 아, 이게 맞네, 수긍할 수밖에 없죠. 서로 계약 관계로 너한테 얼마 줄테니까 이렇게 해, 그럼 너도 이만큼 돈 버니까, 라고 하는 게 아닌 거죠. 우리가 이렇게 계획하는데 너희도 원하는 거 아니었냐고, 우리 혼자 만드는 게 아니고 같이 만들자 해서, 서로간에 이해타산관계가 아니라 같이 뭔가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루어가는 관계기 때문에 시너지가 훨씬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직원들도 뽑으려고 뽑은 게 아니라 다 좋아해서 먼저 찾아와준 사람들이예요. 직원 중에 건엽이라는 친구는 어릴 때부터 모자를 너무 좋아하고 만들고는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서 시작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안티도트>는 거래처도 있고, 매장도 있으니까, 시작이 되는 거예요. 이 친구도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씩 쉬는 날 시간내서 서울 가서 자기 모자 제작하고 있어요.

 

 


<비욘드 가라지> 파티의 현장:  아닌게 아니라 열에 여덟은 형, 동생, 오빠하며 인사하는 사람들. 부산에서 논다 하는 사람들은 다 모인 것 같은데, 다 친구란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도 그 친구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저는 나름 준비하는 말이 있어요. TED강연을 하게 되었거든요. (~!)

막상TED한다고 생각하니 되게 떨려요. 집에서 그러더라구요. “니가 인간이 안됐는데, 남들한테 무슨 얘기를 한다는 기고!” 사실 저도 그런 자리에서 말할 자격이 있는지 되게 의문이거든요. 저희는 성공하지도 않았고, 저희끼리 십몇년을 그냥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특출난 사람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몇 백명이 모인 자리에서 우린 이렇게 살아왔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얘기할 순 없잖아요.

 

저는요. 몸에 문신이 되게 많거든요. 근데 제가 결혼식 같은 데 정장 입고 갈때와 여름에 반바지 입고 다닐때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진짜 외모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인 거죠. 다양한 것들에 대해 선입견이 없고, 벽이 없어서 저 사람은 저게 자기 삶의 라이프스타일이고 그래서 존중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게 없잖아요. 그 시선이 너무 차갑더라고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다양한 문화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선입견이 심해서 배척을 많이 하니까 그게 선진국으로 갈 수 없는 제일 큰 문제점인 거 같애요. 그런 시선의 벽을 없애는 노력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이야 매장을 몇개 하고, <비욘드 가라지>도 하고, 사람들이 얘들 멋있다, 좋다, 성공했다 하지만, 저희가 아무 것도 없이 바닷가에서 옛날처럼 봉고차에서 자는 모습이었을 때는 정말 차가운 시선들이었거든요. 미친 놈들, 사회 부적응자들, 아웃사이더들, 니게 할 수 있는 게 뭐냐.

 

그런데 한창 서핑한다고 돌아다닐 때 외국에서 만난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그분은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중년남성 분이었는데 저에게 “니가 벤츠를 탈 것이다” 그러시더라구요. 제가 한 거라곤 좋아하는 서핑에 미처 그것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아마 그 열정을 되게 좋게 봐주셨던 거 같아요. 그거 때문에 계속 이어오게 된 거죠. 자기와 좀 다르더라도 좀 좋게 봐주는 시선이 필요한 게 아닌가.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동생들한테 아, 이 형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서 잘 됐구나, 그래야 따라오잖아요. 동생들이, 후발주자들이 저 형이 서핑만 주구장창 탔어도 잘 살더라, 이런 모습이 될 수도 있어야 하잖아요. 방식적으로는 저희 방식대로 계속 하고 싶어요. 타협하고 싶진 않아요.

 

 

TED하면 반응 좋을 거 같다

 

18분 만에 이 얘길 다 해야해요. 아마 덜덜 떨다가 내려올 거 같아요. 마지막에 안티도트쩜씨오쩜케이알도 해야하는데.

 

 

지금까지 잘 오고 있다고 생각하나?


(같이) 너무 힘들어요. 죽을 거 같애요.

 ) 어떻게든 되겠지, 가 지금까지 이어온 거예요. 어떨 때는 둘이서 얘기해요미친 놈들 같다고. 이기 뭐하는 짓이냐고.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 <안티도트>를 하면서 느꼈던 건 주위에 괜찮은 친구들, 어떤 분야에 뛰어난 친구들이 되게 많은데 결국 국영수를 못해서 뒤쳐져있던 친구들이잖아요. 국영수를 못해서 대학도 못가고 부적응자들이 된 거예요. 서핑을 타건 스케이트 보드를 타건 이런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그 친구들을 모아서 할 수 있는 회사가 되어야겠다. <안티도트>의 의미를 이제서야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 해독제가 되어야겠다. 기존의 회사, 조직,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다르게 가야겠다, 생각하는 거죠. 저희는 직원들과도 사장과 직원 관계가 아니예요. 오빠, 동생, . 저희 직원들은 저희를 보며 먼 미래를 보는 것 같아요. 그런 거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게 느끼고 있거든요.

 

) 이제는  남들의 기대에 밀려서 가는 것도 없지 않아 있어요. 우리가 계획했던 거보다 훨씬 더 잘해야겠다 그런 느낌 있잖아요. 서핑을 너무 좋아하지만 한여름에는 서핑을 타러 갈 수 없는 지경에 와버렸어요 (ㅠㅠ) 서핑대회가 많이 생겼는데 저희는 탈 수가 없어요. 심판을 봐야 하니까 (ㅠㅠ) 회의감을 한번씩 느껴요. 의미를 찾는 게 달라진 거죠. 단순히 내 개인적인 즐거움을 찾기보다는 이제는 그 즐거움이 다같이 공유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 일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하니까 좀 괜찮아졌는데 한번씩 멘붕이 오죠. 너무 떠밀려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근데 멈출 수가 없어요. 고집스럽게 하고 있어요.

 


<비욘드 가라지> 의 두 주인공:  너도 취하고, 나도 취하고, 그들도 취하고, 카메라 든 손도 취하고. 초점쯤 안맞으면 어때. 설정샷 따윈 필요 없어. 취하지 않는다면 비욘드 가라지가 아니다.



 

막상 인터뷰를 하고 보니 그들은 천상 순둥이. 꿈을 위해 착실히 노력하는, 반듯한 부산 청년들이었다. 가운데 손가락 올리고 거침없이 전진하리라 짐작했는데, 두손 모아 배꼽 위에 차분히 올려놓고 조곤조곤 부산 사투리로 세상에 하고 싶은 말 다 해보라 하니 장장 8시간 30!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대놓고 주먹질하고 욕한 것보다 더 우아하게 나긋나긋하게 할 말 다 했던 것이었을 뿐. 각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품안에 숨기고 사는 그들은, 진정 부산의 각진 사나이들이었다.



....

다음 각진이 인터뷰 예고 

부산에서 설렘설렘을 안고 돌아온 0팀의 촉에 걸린 다음 각진이는 홍대에 있었으니, 마성의 매력을 음악으로 뿜어내는 19금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나러 서교동으로 고고 - 0팀의 각진이 인터뷰는 계속 된다.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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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인터뷰

각진이 1.  김석관 + 서장현 @ 부산 색동길

 

 

 

조용한 주택가 뒷골목이었던 부산 색동길이 감각적인 멋진 가게들로 채워졌다. 변화의 주범은 서핑 용품 편집샵 <안티도트(Antidote)>를 오픈한 청년들. 캘리포니아도 아닌 부산 골목에서 서핑 용품을 판다. 연이어 문을 연 <고사우스(Go South)>도 온전히 서퍼의 꿈으로 완성된 곳.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부산항 앞 창고 건물을 개조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했다

유학파 절대 아님. 부산 사투리 장난 아님. 샵 인테리어 보통 아님. 서핑에 미쳐 제 정신 아님.

한마디로 골때리는 청년들. 그 프로필에 호기심 발동, 부산행 KTX를 탔다.  

 

(featuring; 부산 사투리)

 

2부

 

 

서핑한다고 해서 재벌 2세인 줄 알았다 

 

) 그런 오해들을 많이 하시는데, 부산의 할렘가 출신이예요.

 

 

서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 산동네에 살아서 바다도 일년에 몇번 안가봤지만, 막연히 바다를 동경하다가 우연히 영화를 보고 서핑을 알게 됐죠. 다음에 있던 카페, ‘서퍼스 파라다이스’에도 가입했어요. 3번째 회원이었나.  “운영자님, 서핑이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글도 올리고 운영자도 만나게 됐죠. 호주에 여행 갔다가 한번 체험하고 온, 부산 사는 동생이었어요. 만나서 서핑을 했다기 보다는, 둘이서 상상을 하기 시작하는 거죠. (상상 담당이라더니 이때부터 상상을 잘하게 되었나보다)


그러다 우연찮게 카페에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고, 미국에서 서핑 하던 유학생 형들을 만나고, 그 형의 보드를 중고로 샀어요. 서핑 보드란 걸 직접 보게 되고, 바다에 들어가게 된 거죠. 친구 허석환과 셋이서 보드 하나 가지고 타고 기다렸다가 또 타고. 제대로 배울 데도 없고, 지금처럼 동영상 자료도 거의 없으니까, 글로 배웠어요. 탈 줄은 모르고, 바다에서 세명이 둥둥 떠있었어요. 그게 저희한테 서핑이었죠. 마침 거기 세일링 클럽이라는 게 있어서 윈드서핑하는 누나가 웻수트라는 것도 빌려주고 그 누나도 같이 하고 있으니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모이는 거죠. 잘하는 사람들이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밀어주기도 하고,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마침 나타난 허석환: 이로써 초등학교 3인방이 다 모였다. 시크하고 차가운 걸 컨셉으로 하고 있다는 허석환은 신혼여행 후 어젯밤 하와이에서 새카맣게 타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마침 엄청 큰 서핑대회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건 거라고. (아무래도 서핑대회가 주 목적이었던 듯) 매장 진열 용도로 모래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불법임에도 들고 왔다며 생색을 낸다. 모래 출처 아무도 모를 텐데. 툴툴거리면서도 뿌듯해하는 본새가 영락없는 소년이다.

 

 

 

지금까지 쭈욱 서핑을 해 온 건가?

 

) 이 친구(서장현)는 그 길을 계속 걸어왔던 거고, (김석관)는 중간에 너무 힘들어가지고 먹고 사는 길로 갔죠. 같은 장남인데 반대예요. 이 친구는 자기 삶에 대한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저는 식구들을 더 생각해서 현실에 타협을 한 거죠. 그런데 이 친구의 삶이 저한테는 간접적으로 좋았어요. 제가 욕구 불만일 때 한번씩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멋지게 산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겉모습은 찌질하고 거지 같지만, 얘 고시원에 산 적도 있었거든요.

 

 

서핑 때문에 가출을?

 

) 서핑을 하려니까, 원래 살던 산동네 집에서는 바다까지 너무 멀잖아요. 부산도 꽤 크기 때문에 (웃음) 버스로 한 2시간 가야되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집을 나왔어요. 해운대는 비싸잖아요. 고시원에도 살다가, 재개발하는 무너지기 직전의 친구집에도 살다가, 봉고차를 하나 사서 개조해 가지고 바닷가에 세워놓고, 좋게 말하면 히피처럼, 거의 10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뭐 대충 이런 모습?

 

 

 

) 나이도 있는데 직장은 없고, 한번씩 부산 내려오면 호프집에 아르바이트 하고 있고, 어떨 땐 발리 가 있고, 어떨 때는 홍대 와가지고 구제 판다고. 

 

) 취미생활인데 너무 꽂혀가지고 유지를 하려니 돈이 필요하고 집에서는 돈 나올 곳이 없으니까.

아르바이트 계속 하고 돈 생기면 바로 떠나고. 도피하고 싶은 것도 있었죠. 여기서는 혼란이 많잖아요. 경제적인 거나 주위의 시선이나 혼자 스트레스 받으면서 이겨내야한다는 생각을 계속 해야하니까. 외국에 있으면 아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상관 없으니까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버릇처럼 계속 그렇게 되드라구요. 20대를 그렇게 보냈어요.

 

 

태풍 다나스가 온 다음날 아침, 파도 타러 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대체 서핑의 매력은?

 

) 우리가 처음 탔을 때는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고, 타봐야 1~2초 살짝 가다가 넘어지거나. 파도도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많이 오지도 않고 컨디션도 안좋고 힘도 없고. 억지로 파도 스피드 잡아서 일어서야 하는 건데 그 몇초도 안되는 그거 때문에 새벽에 일기예보 파도 차트 체크해서 친구들 약속 잡아서 장비 챙겨서 바다까지 갈 때 두근거림 있잖아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파도. 바다에 떠가지고 애들끼리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파도 하나도 못타도 거기서 애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거죠. 그게 매력이죠. 

 

) 저희는 서핑이 파도를 타는 스포츠라고는 생각을 안하거든요. 전날부터 내일은 파도가 있을 꺼야, 소풍가기 전날처럼 이것저것 챙기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다 서핑이 아닐까. 그게 즐거운 거였고

사실 한국에서는 서핑하는 환경이 좋지는 않아요. 정말 쾌감을 느낄 정도로 큰 파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도 잘 없는데. 부산이 주는 바다가 있는 광경, 서핑을 타기 위해 가는 일련의 과정, 그 모든 것이 좋았던 거 같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또 서핑이었고. 

 

) 소통의 장이죠. 서핑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직업을 가진 분들도 되게 많고요. 

저는 현실에 안주해서 좀 떨어져 있었잖아요. 둘이 비교를 해서 보니까 이 사람은 많은 사람은 알게 된 거고 저는 이 친구보다는 돈을 좀 더 벌었죠. 우리 둘이 합쳐지면서 조그마한 매장이 하나 생기게 되었고

(이건 운명이야) 매장을 냈다는 소문에 장현이가 알던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의 힘을 받아서 1년 만에 홍대 매장을 내고 또 힘을 받아서 1년 만에 <고사우스> 낸 거예요. 1년 뒤에 <비욘드 가라지>가 생긴 거고. 매년 하나씩 늘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어마어마하게 성공했다 생각할 수도 있죠. 근데 어마어마한 빚을 졌죠 (웃음)

 


가족들의 반응은?

 

) 가족들은 뭘 하는지도 몰라요. <비욘드 가라지> 공사할 때도. 새벽같이 나가서 맨날 더러워져서 들어오니까 의심은 하겠죠. 사실 말도 안해요. 약해질 거 같거든요. 하는 것도 제대로 안되고 있으면서 뭘 또 새로운 걸 벌이냐고, 돈도 안 될 거 같은데 왜 계속 그렇게 무리해서 하느냐고 듣기 시작하면 저희가 약해질 거 같아서 일단 저질러놓고 뒤에 수습하는 거죠.

 

 

지금은 가족들도 좀 자랑스러워하지 않나?

 

(같이) 절대 그런 거 없어요. 뭐하는 짓이냐고 그래요. 

) 어머니나 동생들은 아예 이 문화를 몰라요. 서핑이 뭔지, 캠핑이 뭔지, 보드가 뭔지. 뭐 하는 건데 이렇게 비싸냐고. 바로 길만 건너도 5천원 짜리 티셔츠가 천지 삐까리로 널렸는데. 이기 뭔데 이래 비싸냐. 얘기를 하면 5분 이상 대화가 안되요.

 


 

- 3부에 계속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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