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 인터뷰

각진이4.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 @서울 이태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커피와 차를 테이크아웃 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일상 속의 단어, ‘테이크아웃’. 그런데 만약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동시대의 예술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8년째 드로잉(drawing)을 전파하고 있는 곳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처음 온 사람들은 기필코 반하게 되고 만다는 그곳,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 인터뷰는 2014 5 14일 수요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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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작가들도 카페 레지던시에 참여하더라. 이들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굳이 국내작가, 외국작가를 나누지는 않고요. 테이크아웃드로잉 작가 선정은 고집스럽게 제가 지명을 했던 것 같아요. 우주의 기운으로 못된 지명! (웃음) 외국작가의 경우는 여행 갔다가 전시를 보고 초대했던 경우도 있고, 저희가 외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다시 한국에 초대해서 발표한 경우도 있고요. 또 제가 전혀 모르는 작가인데 지원하는 경우도 많아요. 몇 년 전부터 오픈콜을 열어뒀거든요. 제 지명으로만 하다 보면 새로운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없지 않더라고요. 


오픈콜에 지원하는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것 같아요. 가끔 되게 유명한 분들도 지원을 하세요. 그럼 제가 오히려 “전 못하겠어요 작가님 오시면 전 진짜 힘들 것 같아요” 이러기도 하고. (웃음) 근데 가만 보면 공간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이런 상황 때문에 오시는 것 같아요. 좀 이상하고 특이하잖아요. 본인을 던져야 할 것 같고, 거의 죽어야 나갈 것 같잖아요. (웃음) 사실 작가한테는 되게 힘든 공간이에요. 문도 없고, 작업하는 공간을 사람들이 막 왔다갔다 하면서 쳐다보고. 이렇게 정신 사납고, 이렇게 시끄럽고, 이렇게 사람 많은 공간에서 작가들은 작업 못해요. 근데 이런 저잣거리가 필요한 작가들이 있어요. 어떤 주제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정신 사나운 공간에서 해야만 발화가 되는 거예요. 그럴 때 하는 거지, 모든 작가의 모든 작품이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어울리진 않아요. 어떤 작품들은 단아한 화이트 큐브에 가야 훨씬 더 예쁘죠.


그럼 너무 정신 없고 시끄러워서 힘들어하는 작가들은 어떻게 도와주나?

본인의 지혜가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주말은 사람이 많아서 저도 이어폰 끼고 일할 정도인데, 시간대를 좀 달리 하면 돼요. 저흰 작가분들이 입주하시면 마스터키를 드려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작가테이블이니까 쓰세요”가 아니라 공간을 다 드려요. 작가 약정서에 보면, 저희가 드리는 건 ‘동네’라고 표현해요. 마스터키 드린다는 의미는 들어가면 안 되는 공간이 없다는 얘기고, 24시간이 열려있다는 의미예요. 비밀도 없고요, 원칙과 시스템, 신념? 그런 거 없습니다, 저희는. 그냥 믿어주는 거. 자기 이름 걸고 전시하니까 최선을 다할 거라는 믿음을. 실패? 실패도 많이 했죠. 괜찮아요. 드로잉인데 뭐. 여긴 실패가 허용되는 공간이에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전시는 일반 미술 전시와는 분명 다르다. 관객참여형 전시도 있었고, 작업공간이 오픈 된다는 점에서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관객과의 인터랙티브한 프로젝트들을 작가가 의도한 경우도 있었지만 저희가 일부러 포지셔닝한 경우는 없었어요. 아무래도 카페니까 오픈콜에 지원하는 작가분들이 관객참여형 제안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저희는 카페이면서 또 미술관이잖아요. 그러니까 현대미술, 혹은 예술계에서 지금 작가가 발표하시려는 주제가 중요한가, 혹은 중요치 않더라도 의미가 있는가를 항상 염두에 둬요. 거기에 비중이 크게 있기 때문에 관객이 못 따라오더라도 일단 발표하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예술에 문외한인 관객분들을 위해 작가의 작업 세계가 궁금하다면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문을 꼭 하나씩은 열어두죠. 작가의 메시지를 반복노출 시키는 드로잉 신문도 있고, 작가의 전시에서 나온 저희 카페의 드로잉 메뉴로도 만나실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함성호 작가의 <두 집 사이>라는 전시가 어려워서 이해를 못하셨다 해도 거기서 만들어진 ‘마그마 아카시아’란 음료로만 기억해 주셔도 좋아요. 자꾸 경험의 층이 쌓이는 게 중요한 거지, 한번에 예술이 이해가 되는 건 불가능한 거 같아요.


작가의 전시에서 나온 ‘드로잉 메뉴’라고?

체류작가가 아트테이블을 통해서 첫 신고식을 하면 그때부터 스태프들이 메뉴를 구상해요. 작가 노트 속에서 작품-메뉴를 ‘작품’이라 지칭했다-이 나온 경우도 있어요. 계속 개미 드로잉을 하셨던 연기백 작가는 노트에 ‘폭풍이 오면, 언젠가 때를 만나면 솟구치고 싶다’는 욕망을 적으셨어요. 거기서 ‘폭풍개미’라는 음료가 나왔죠. 또 건축가 메뉴 시리즈가 있는데, 건축가분들은 오시면, “또 다른 건축가 메뉴는 뭐 있어요?” 물으시고 건축가 메뉴만 드시는 분들도 있고요. 아, 이웃집 강아지 때문에 나온 메뉴도 있어요. 체류 중이던 로랑 페레이라란 벨기에 건축가가 공간의 실루엣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메뉴 개발자 눈에 옆집 강아지 폴이 만들고 다니는 공간의 에너지랑 실루엣이 들어온 거죠. 그래서 강아지가 머랭을 매일 훔친다는 스토리로 ‘폴의 머랭공장’이란 저희 대표 메뉴가 나왔고요. 메뉴도 작품이기 때문에 작가를 그대로 해석한 메뉴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래 생명력이 없어요. 근데 개발자가 그 주제에 자기 스토리를 넣으면 그 메뉴는 생명력이 있어요. 물론 정말 맛있어야 되고요. 미술관이지만 카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 시내 어디 커피보다 맛도 중요하고 재료의 질도 중요해요. 




<드로잉 메뉴 Drawing Menu>

체류작가와 테이크아웃드로잉 멤버들이 함께 <아트테이블>을 갖고 주제를 메뉴로 실험하는 기간을 거쳐, 전시시작과 함께 메뉴를 공개한다. 전시 이후에도 레지던시 작가들의 주제를 메뉴로 만날 수 있다. 



돌 맞을 뻔한 전시도 있었다고?

작가분이 성정체성을 주제로 한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 서울에서 남자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전시하셨어요. 유리창에 시트지로 게이바들 이름을 다 공개한 거죠. 또 음악을 틀 수 있으니 시트지를 뜯어서 내는 소음을 사운드로 전시를 한 거예요. 카페 간판은 커다란 레인보우 간판으로 걸고. 동네 주민인 엄마들이 난리가 났죠. 손님들 불만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미쳤다고. “테이크아웃드로잉 드디어 망했구나!” (웃음) 근데 전시를 하면 저희가 작가분이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전시를 하는 거라고 설명드릴 수 있잖아요. 그럼 조금씩 변하는 게 목격되는 거예요. 아들을 데리고 온 어떤 엄마가 “남자도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 근데 엄마는 싫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전 그거면 된 거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이런 전시를 통해서 “그런 전시가 있대”, 이거면 된 거 같아요. 


예술 전공자로서 본인의 작품을 올리고 싶은 생각은 없나?

전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행위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인 거 같아요. 현재는 예술가의 숫자에 비해서 기획자나 기획하는 공간의 수가 너무 부족해요. 불균형이고 결핍인 거죠. 우리가 잘 아는 고흐가 사실 얼마나 외로웠고, 얼마나 불행했어요. 자기 작품을 이해해줄 친구를 찾기까지 별별 사건이 많았지요. 근데 만약 그 시대에 저희 같은 공간이 옆에 있었으면 목격자가 조금 더 있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목격자들이 조금 더 많이 가담했다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지금 막 작품을 발표하는 예술인들에겐 많은 응원이 필요해요. 



3부에 계속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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