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 인터뷰

각진이 1.  김석관 + 서장현 @ 부산 색동길

 

 

 

조용한 주택가 뒷골목이었던 부산 색동길이 감각적인 멋진 가게들로 채워졌다. 변화의 주범은 서핑 용품 편집샵 <안티도트(Antidote)>를 오픈한 청년들. 캘리포니아도 아닌 부산 골목에서 서핑 용품을 판다. 연이어 문을 연 <고사우스(Go South)>도 온전히 서퍼의 꿈으로 완성된 곳.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부산항 앞 창고 건물을 개조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했다

유학파 절대 아님. 부산 사투리 장난 아님. 샵 인테리어 보통 아님. 서핑에 미쳐 제 정신 아님.

한마디로 골때리는 청년들. 그 프로필에 호기심 발동, 부산행 KTX를 탔다.  

 

(featuring; 부산 사투리)

 

2부

 

 

서핑한다고 해서 재벌 2세인 줄 알았다 

 

) 그런 오해들을 많이 하시는데, 부산의 할렘가 출신이예요.

 

 

서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 산동네에 살아서 바다도 일년에 몇번 안가봤지만, 막연히 바다를 동경하다가 우연히 영화를 보고 서핑을 알게 됐죠. 다음에 있던 카페, ‘서퍼스 파라다이스’에도 가입했어요. 3번째 회원이었나.  “운영자님, 서핑이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글도 올리고 운영자도 만나게 됐죠. 호주에 여행 갔다가 한번 체험하고 온, 부산 사는 동생이었어요. 만나서 서핑을 했다기 보다는, 둘이서 상상을 하기 시작하는 거죠. (상상 담당이라더니 이때부터 상상을 잘하게 되었나보다)


그러다 우연찮게 카페에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고, 미국에서 서핑 하던 유학생 형들을 만나고, 그 형의 보드를 중고로 샀어요. 서핑 보드란 걸 직접 보게 되고, 바다에 들어가게 된 거죠. 친구 허석환과 셋이서 보드 하나 가지고 타고 기다렸다가 또 타고. 제대로 배울 데도 없고, 지금처럼 동영상 자료도 거의 없으니까, 글로 배웠어요. 탈 줄은 모르고, 바다에서 세명이 둥둥 떠있었어요. 그게 저희한테 서핑이었죠. 마침 거기 세일링 클럽이라는 게 있어서 윈드서핑하는 누나가 웻수트라는 것도 빌려주고 그 누나도 같이 하고 있으니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모이는 거죠. 잘하는 사람들이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밀어주기도 하고,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마침 나타난 허석환: 이로써 초등학교 3인방이 다 모였다. 시크하고 차가운 걸 컨셉으로 하고 있다는 허석환은 신혼여행 후 어젯밤 하와이에서 새카맣게 타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마침 엄청 큰 서핑대회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건 거라고. (아무래도 서핑대회가 주 목적이었던 듯) 매장 진열 용도로 모래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불법임에도 들고 왔다며 생색을 낸다. 모래 출처 아무도 모를 텐데. 툴툴거리면서도 뿌듯해하는 본새가 영락없는 소년이다.

 

 

 

지금까지 쭈욱 서핑을 해 온 건가?

 

) 이 친구(서장현)는 그 길을 계속 걸어왔던 거고, (김석관)는 중간에 너무 힘들어가지고 먹고 사는 길로 갔죠. 같은 장남인데 반대예요. 이 친구는 자기 삶에 대한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저는 식구들을 더 생각해서 현실에 타협을 한 거죠. 그런데 이 친구의 삶이 저한테는 간접적으로 좋았어요. 제가 욕구 불만일 때 한번씩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멋지게 산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겉모습은 찌질하고 거지 같지만, 얘 고시원에 산 적도 있었거든요.

 

 

서핑 때문에 가출을?

 

) 서핑을 하려니까, 원래 살던 산동네 집에서는 바다까지 너무 멀잖아요. 부산도 꽤 크기 때문에 (웃음) 버스로 한 2시간 가야되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집을 나왔어요. 해운대는 비싸잖아요. 고시원에도 살다가, 재개발하는 무너지기 직전의 친구집에도 살다가, 봉고차를 하나 사서 개조해 가지고 바닷가에 세워놓고, 좋게 말하면 히피처럼, 거의 10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뭐 대충 이런 모습?

 

 

 

) 나이도 있는데 직장은 없고, 한번씩 부산 내려오면 호프집에 아르바이트 하고 있고, 어떨 땐 발리 가 있고, 어떨 때는 홍대 와가지고 구제 판다고. 

 

) 취미생활인데 너무 꽂혀가지고 유지를 하려니 돈이 필요하고 집에서는 돈 나올 곳이 없으니까.

아르바이트 계속 하고 돈 생기면 바로 떠나고. 도피하고 싶은 것도 있었죠. 여기서는 혼란이 많잖아요. 경제적인 거나 주위의 시선이나 혼자 스트레스 받으면서 이겨내야한다는 생각을 계속 해야하니까. 외국에 있으면 아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상관 없으니까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버릇처럼 계속 그렇게 되드라구요. 20대를 그렇게 보냈어요.

 

 

태풍 다나스가 온 다음날 아침, 파도 타러 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대체 서핑의 매력은?

 

) 우리가 처음 탔을 때는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고, 타봐야 1~2초 살짝 가다가 넘어지거나. 파도도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많이 오지도 않고 컨디션도 안좋고 힘도 없고. 억지로 파도 스피드 잡아서 일어서야 하는 건데 그 몇초도 안되는 그거 때문에 새벽에 일기예보 파도 차트 체크해서 친구들 약속 잡아서 장비 챙겨서 바다까지 갈 때 두근거림 있잖아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파도. 바다에 떠가지고 애들끼리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파도 하나도 못타도 거기서 애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거죠. 그게 매력이죠. 

 

) 저희는 서핑이 파도를 타는 스포츠라고는 생각을 안하거든요. 전날부터 내일은 파도가 있을 꺼야, 소풍가기 전날처럼 이것저것 챙기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다 서핑이 아닐까. 그게 즐거운 거였고

사실 한국에서는 서핑하는 환경이 좋지는 않아요. 정말 쾌감을 느낄 정도로 큰 파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도 잘 없는데. 부산이 주는 바다가 있는 광경, 서핑을 타기 위해 가는 일련의 과정, 그 모든 것이 좋았던 거 같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또 서핑이었고. 

 

) 소통의 장이죠. 서핑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직업을 가진 분들도 되게 많고요. 

저는 현실에 안주해서 좀 떨어져 있었잖아요. 둘이 비교를 해서 보니까 이 사람은 많은 사람은 알게 된 거고 저는 이 친구보다는 돈을 좀 더 벌었죠. 우리 둘이 합쳐지면서 조그마한 매장이 하나 생기게 되었고

(이건 운명이야) 매장을 냈다는 소문에 장현이가 알던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의 힘을 받아서 1년 만에 홍대 매장을 내고 또 힘을 받아서 1년 만에 <고사우스> 낸 거예요. 1년 뒤에 <비욘드 가라지>가 생긴 거고. 매년 하나씩 늘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어마어마하게 성공했다 생각할 수도 있죠. 근데 어마어마한 빚을 졌죠 (웃음)

 


가족들의 반응은?

 

) 가족들은 뭘 하는지도 몰라요. <비욘드 가라지> 공사할 때도. 새벽같이 나가서 맨날 더러워져서 들어오니까 의심은 하겠죠. 사실 말도 안해요. 약해질 거 같거든요. 하는 것도 제대로 안되고 있으면서 뭘 또 새로운 걸 벌이냐고, 돈도 안 될 거 같은데 왜 계속 그렇게 무리해서 하느냐고 듣기 시작하면 저희가 약해질 거 같아서 일단 저질러놓고 뒤에 수습하는 거죠.

 

 

지금은 가족들도 좀 자랑스러워하지 않나?

 

(같이) 절대 그런 거 없어요. 뭐하는 짓이냐고 그래요. 

) 어머니나 동생들은 아예 이 문화를 몰라요. 서핑이 뭔지, 캠핑이 뭔지, 보드가 뭔지. 뭐 하는 건데 이렇게 비싸냐고. 바로 길만 건너도 5천원 짜리 티셔츠가 천지 삐까리로 널렸는데. 이기 뭔데 이래 비싸냐. 얘기를 하면 5분 이상 대화가 안되요.

 


 

- 3부에 계속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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