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이 4. 테이크아웃드로잉 4부
각진 인터뷰 2015. 3. 11. 15:01 |각진이4.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 @서울 이태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커피와 차를 테이크아웃 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일상 속의 단어, ‘테이크아웃’. 그런데 만약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동시대의 예술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8년째 드로잉(drawing)을 전파하고 있는 곳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처음 온 사람들은 기필코 반하게 되고 만다는 그곳,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 인터뷰는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되었습니다]
4부
‘동네’라는 단어를 꽤 여러 번 이야기 했다.
왜 여행을 하다 보면 관광지가 아니라 골목 속을 다니고 싶잖아요. 한국의 문화유산 중에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동네’에요. 동네에는 엄청난 문화 자원이 있을 뿐 아니라, 거기서 살아온 저희의 기억이 있잖아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운영하면서부턴 저희의 삶이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그전엔 동네에 누가 사시는지도 모르고, 그분들도 저희가 뭘 하는지 몰랐는데 이런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오픈을 하고 나니까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알만한 분들이 “나 니네 뭔지 알 것 같애” 하고 쫙 모이신 거죠. 자꾸 들리셔서 이 동네에 누가 들어올 거래, 뭐가 들어올 거래, 그런 새로운 소식들을 물어다 주시기도 하고요. 네트웍이 스물스물 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굉장히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그러면서 별별 전시를 다 했죠.
동네와 관련된 전시도 있었나?
<이웃의 미학>이라는 프로젝트에서 전보경 작가는 이 동네의 20개 상점을 다 인터뷰하고 다녔어요. 그리고 그 가게들에 자기 작품을 하나씩 물물교환했어요. 그러니까 전시할 때 그 상점분들이 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보러 오시더라고요. 또 전 계속 여기 사니까 전시 후에도 그 가게들에 계속 가면서 “어, 작품에 먼지 탔어요~”하고 관리도 하게 되고요. 예술이 뭐 다른 차원에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 있는 거죠.
또 <사소한 조정/ 유령>이란 전시에서는 ‘고스트 투어’라고 해서 이태원을 돌며 미군들이 사건을 일으킨 장소를 방문하러 다니는 것도 했어요. 런던에서 한 작가를 초빙해서 한국작가가 협업했는데 이방인이의 시선이 같이 한 거죠. 그런 주제는 재미있고 열광할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렇게 한 전시, 한 전시, 그 주제가 저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되게 크다는 걸 제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공간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 예술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삶에 착착 밀착이 되니까. 도시는 누군가 뚝딱 만드는 게 아니니까 우리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특히 그 주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그러면 도시의 비전이, 동네의 비전이 보이는 거죠.
동시대의 일반대중 혹은 예술가에게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예술가의 에너지가 충만해있는 공간. 근데 예술가라고 해서 나와 먼 ‘그들’이 아닌, 한 공간에 머무르는 실체가 있는 예술가 말이에요. 사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무엇이 됐으면 좋겠다는 비전 자체가 없어요. 그랬으면 아마 간판을 굉장히 크게 걸었을 거예요. 대신 제가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된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다윗이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상대해 싸울 수 있었던 건 다윗이 양치기여서였대요. 양을 돌보며 늑대들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해 매일 한 일이라고는 돌 던지는 것이었다는데, 그게 어느 날은 거인을 쓰러뜨린 한 방이 된 거죠. 다윗의 삶 속엔 이미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준비되어 있었던 거예요. 반복과 연습을 통해서. 집요하게, 배짱 있게. 그냥 심심해서 던지는 돌이 아니라 뭔가를 생각하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생리도 그런 것 같아요. 이 종이 하나, 이 그리는 초안 하나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런데 누군가는 그걸 열과 성을 다해서 이사까지 와서 두 달간 밤 새서 작업하는 거고, 어떤 기획자는 그 드로잉이 너무 훌륭하다고, 훌륭해질 수 있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거죠. 인터뷰하고, 질문하고, 계속 수정과 보완을 요청하면서 그렇게 도모하는 거예요. 그럼 그 공간에 계속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을까요. 어떤 날은 관객이 음료 드시다 불쑥 올라와서 예전에 했던 전시에 대해 질문을 하세요. 그럼 깜짝깜짝 놀라요. 목격자가 있는 거예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오픈한 지 벌써 8년째. 시작할 때의 초심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그 당시 생각한 게 드로잉의 중요성이었는데, 지금 8년이 지났지만 그 중요성은 더해진 거 같아요. 정말 중요해요. 우리 모두 각자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의 삶을 대신 만들어주지 않으니까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했잖아요. 저희는 완전 오픈 스튜디오예요. 기획자인 제 방에도 문이 없어요. 이런 공간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대요. 작가에겐 굉장히 불편한 공간이죠. 모든 게 공개된 공간. 작가가 뭘 하든 예약 없이도 언제든지 무단 침입할 수 있는 공간. 고객에게, 방문자에게, 관객에게 주도권을 주는 공간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인 거 같아요. 단지 5,000원짜리 커피를 사고, 서점을 구경하러 왔을 뿐인데, 본인이 주체가 되는 거예요. 단순히 영화 티켓 사듯이 문화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질문을 할 수도 있고, 뭔가 이해가 안되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고요. 여기선 스스로 문화생산자가 될 수도 있고, 가담할 수도 있단 걸 알게 되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드로잉은 아직 미약한 존재인 것 같아요. 이게 아직 초안이기 때문에. 사실 이 공간에서 아무리 열심히 전시하고 홍보해도, 와서 전시를 보는 사람은 한 전시당 만 명 미만이에요. 사람들은 고작 만 명 갖고 문화가 형성될 수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드로잉 한 조각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순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바로 이 드로잉에서 그 문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일단 저희 앞의 드로잉 하나 하나를 최선을 다해서 해보는 거죠. 드로잉은 분명 언젠간 발화될 거니까요. 많이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런 생각과 구상을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여기가 굉장히 작은 공간이고 동네에 위치하고 있으니 저희의 관심은 지금, 여기서, 저희가 가장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데 있어요. 함께 동행하는 거죠. 동행하고, 동거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자세. 그게 테이크아웃드로잉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겐 카페, 누군가에겐 뮤지엄, 누군가에겐 작업실, 누군가에겐 꽃집, 누군가에겐 책방. 4시간의 인터뷰 끝에 확실히 알게 된 건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결코 어떤 하나의 단어로 정의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드로잉 메뉴 한 잔을 앞에 두고 최소연 디렉터의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 새 ‘우주의 기운’에 감싸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듯이, 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 따뜻하고 건강한 에너지가 그녀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각이 아닐까. 이 기운과 생각들이 더 많이, 더 멀리, 끝도 없이 테이크아웃 되기를 바래본다.
© 글/사진 TBWA 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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