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 인터뷰

각진이 4. 테이크아웃드로잉 3부

0team 2015. 3. 11. 14:57

각진 인터뷰

각진이4.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 @서울 이태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커피와 차를 테이크아웃 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일상 속의 단어, ‘테이크아웃’. 그런데 만약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동시대의 예술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면?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8년째 드로잉(drawing)을 전파하고 있는 곳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처음 온 사람들은 기필코 반하게 되고 만다는 그곳,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테이크아웃드로잉 최소연 디렉터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 인터뷰는 2014 5 14일 수요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되었습니다]



 

 

3부


1층 정원이 참 아담하고 예쁘더라. 근데 젊은 사람들 가득한 카페 정원에서 동네 할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꽃을 돌보고 계셔서 놀랐다

원래는 주차장이었던 공간을 정원으로 바꿨는데 처음엔 대책이 없었어요. “대체 뭘 어떻게 심어야 하는 거지?” 질문이 생성되는 거죠. 근데 저희는 질문을 좋아하거든요. 질문은 항상 답을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또 신기하게 흙과 에너지를 좋아하시는 동네분들이 저절로 모이시더라고요. 저희가 흙을 막 쌓아 놨더니 굉장히 당당히 흙 좀 달라고 오셨어요. “나 이 흙 좀 쓰겠네. 대신 내가 뭘 심어주지” (웃음) 방아는 그렇게 마을 주민들이 와서 심어주신 건데요, 어떤 의미에선 방아도 드로잉인 거죠. 또 저희 음료에 허브가 들어가는 게 있으면 직접 길러 보기도 하고요. 일부러 ‘이 음료에는 이게 들어가니 이걸 심자’가 아니라, 그냥 우주의 기운을 따라가는 거예요, 그 흐름을.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니까.  





정원 바로 옆 책방도 인상적이더라. 정원과 책방을 함께 ‘ㅊ’이라고 부른다고?

처음엔 이름이 없었어요. 저희 프로그램 중에 키오스크가 있으니까 그냥 키오스크라고 운영했는데, 스웨덴에서 온 한 예술가가 제안을 했어요. 한국에 있는 문화적인 서점인데, 이름이 왜 키오스크냐고. 한글은 ㄱ,ㄴ,ㄷ,ㄹ 너무 아름다운데, 그 중 ㅊ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왜 치읓이에요?” 저희도 똑같은 질문을 했죠. 그랬더니 “ㅊ은 꽃의 ㅊ이기도 하고, 책의 ㅊ이기도 하고, 친구의 ㅊ이기도 하고…” 이렇게 ㅊ이 들어간 단어들을 총총총 얘기하는 거예요. 그 순간 그냥 매료된 거죠. “그래요? 그럼 하죠!” 지금도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그분에게서 계속 메시지가 와요. 그럼 즐겁게 수용하죠. 저희 공간은 제안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모자라니까, 부족하니까 그럴 텐데 저흰 그 결핍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늘 결핍되어 있다고 표현해요. 완성된 예술 형태나 완성된 문화공간, 완성된 어떤 삶의 형태보단 불안정하고 미완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허용하는 좀 릴렉서블한 공간이니까. 그래서 ‘유기체’인 거죠.




<ㅊ chiut>

테이크아웃드로잉 속의 작은 책방이자 골목정원 ‘치읓’. ㅊ은 책/꽃/창/첫/참/친구/찾았다/촘촘히/천천히/착하다 등의 이니셜 약자다. 동시대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서적뿐 아니라 직접 식물을 심고 가꾸는 법을 배우는 플라워/가드닝 워크숍도 만날 수 있다. 



<난센여권>이라는 책을 냈다.

‘난센여권’은 1922년도에 프리드쇼프 난센이라는 사람이 발행했던 여권이에요. 그 사람이 세계 대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지 못한 군인들을 돌려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대요. 그게 성과가 있어서 사회적 움직임이 만들어졌고, 이 편지 형태의 여권 덕에 전쟁포로로 남을 뻔한 어마어마한 수 만 명이 귀향하게 된 거죠. 제가 난민관련 주제를 만난진 얼마 안됐는데,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을 그냥 딱 눈뜨고 보게 된 것 같아요. 초대 메일을 받고 가리봉동에 있는 난민지원센터를 방문했는데 그 이상한 기운이 있는 거예요. (웃음) 거기 활동가분들은 퇴근 후에도 난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주말에도 만나서 어떻게 할지 의논하시더라고요. 여긴 분명 뭔가가 있다! 그게 궁금해서 난민지원 단체의 활동가분들을 존중해드리는 시선으로 인터뷰했어요.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크게 나눠서, 어떤 일을 했길래 지금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하며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앞으론 뭘 하고 싶은지 질문해봤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난민분들을 소개해주셔서 인터뷰의 폭이 넓어졌죠. 



<난센여권 - 난민을 위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권 한 장> 

테이크아웃드로잉 디렉터 최소연과 건축가 최장원이 기획하고 진행한 워크숍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자국에서의 박해와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오는 길 위에 만들어진 난민들의 과거-현재-미래를 담은 인터뷰를 비롯해 난민 지원 기구 활동가들과 인권변호사들과의 인터뷰, 난민을 주제로 한 책과 영화 목록,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에서 난민이 거쳐온 길, 난민을 주제로 삼은 예술가들의 작품 등이 담겨있다. 





책 외에도 난민관련 전시를 한다고?

프리드리쇼프 난센의 ‘난센여권’도 시민 한 사람의 시선 때문에 엄청난 파장이 있었던 거잖아요. 저는 그게 재미있었어요. 제가 개입하고 있는 난민 프로젝트는 굉장히 일상적인,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예술가들이 함께하며 작품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게 발표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요. 사실 난민들이 한국에 와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정말 불편해요. “한국이 정말 당신한테 그렇게 했어요?” 라고 묻게 되죠. 제가 가해자가 된 거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불편한 현실을 영화나 다큐로 볼 때랑, 예술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될 때는 좀 다르잖아요. 그래서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에선 <일상의 실천>이라는 그래픽 아티스트들이 난센여권을 주제로 4개월 간 체류하고 계시고 <난센여권>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전시를 오픈해요 


난민들과 실제로 ‘동행’하고 있다고? 

난민들에겐 한국말을 할 수 있는 한국친구가 있다는 게 정말 엄청난 일인가 봐요. 그래서 출입국 사무소의 인터뷰가 있거나 직업소개소에서 취업하려고 할 때, 혹은 처음 가는 길을 찾아갈 때 그냥 같이 가주는 거예요. 난민들 중엔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으세요. “나를 동정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시는. “나에게 커피 한잔 사주려고 하지 마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어요. 정말 많이 배웠죠. 그래서 도움의 시선이 아니라 동행하러, 정말 그냥 따라가요. 그럼 9시간이 걸리던 인터뷰가 3시간 만에 끝나기도 하고, 직업을 구할 때도 “뭐 해봤는데?” 라고 묻고 관련된 직종으로 추천해줄 수도 있고요. 이게 무슨 거대한 목적을 가진 소셜 프로젝트가 아니라, 제 삶에 관한 관심인 것 같아요. 내가 살고 있는 이 한국과 이 삶의 토양이 조금 더 즐거웠으면 좋겠고, 조금 더 건전했으면 좋겠다는. 누가 누군가에게 함부로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요. 그냥 안타까워하는 것 말고,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으면 좋겠어요. 각자 할 수 있는 게 하나씩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정치인들이, 기업이 혹은 누군가가 세상을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데, 직접 참여했을 때는 완전히 주체의 역전이 일어나는 거고 능동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 능동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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